[광주/전남]무안서도 시멘트 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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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묘 주변 바닥 페인트칠해… 벌초 등 관리 힘들자 잇달아 등장

전남 무안군 한 야산에 들어선 시멘트 묘지. 무안군 관계자는 “이 묘지는 출향인사의 가묘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전남 무안군 한 야산에 들어선 시멘트 묘지. 무안군 관계자는 “이 묘지는 출향인사의 가묘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농촌 마을 주민 상당수는 노인들이다. 농촌 노인들은 추석이 다가오면 선산을 벌초해야 하는 마음의 짐이 생긴다. 노인들은 청년들조차 힘들어하는 벌초를 하다 부상을 입기 일쑤다. 예초기 부상자 10명 중 3명은 70세 이상 노인이었다.

벌초 등 선산 관리 문제로 도시에 사는 친척들과 다툼도 생긴다. 일부 노인은 “푼돈 쥐여주며 벌초를 맡기는 도시 친척들이 얄밉다”고 한다. 또 묘지를 파헤치는 멧돼지도 골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멘트 묘지를 만들고 있다. 지자체는 잇따라 생겨나는 다양한 시멘트 묘지에 대해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고 있어 묘지 주인들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행법은 묘지 주변을 잔디, 꽃, 나무로 꾸미도록 하고 있다.

전남소방본부는 올해 예초기 사고 부상자 30명 가운데 22명은 50대 이상이라고 15일 밝혔다. 예초기 사고 부상자 30명 가운데 70대 이상은 9명, 여성은 5명이다. 12일 장흥군 장평면의 한 선산에서 유모 씨(71)가 벌초를 하던 중 예초기 날이 깨지면서 왼쪽 다리에 튀어 골절상을 입었다. 앞서 7일 강진군 강진읍에서 박모 씨(60·여)가 예초기로 벌초를 하다 다리를 베였다. 인력난에 예초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노인과 여성들까지 벌초에 나섰다가 화를 입고 있다. 또 벌초를 하면서 벌 떼 공습을 받는 것도 흔하다.

벌초 등이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시멘트 묘지가 조성되고 있다. 전남 무안군 한 야산의 봉안 묘 주변은 잔디와는 다른 연초록빛을 띠고 있다. 멀리서 보면 수풀이 짙게 우거진 것 같지만 다가가 보면 큰 석재로 된 묘 주변 바닥을 시멘트로 덮은 뒤 연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것이다. 주민 김모 씨(57)는 “벌초가 힘들어 묘 주변을 시멘트로 덮고 페인트를 칠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미관상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봉안 묘는 진짜 묘가 아닌 가묘였다. 무안군 관계자는 “서울에 사는 70대 출향인사가 나중에 후손들이 묘를 관리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자신의 가묘를 시멘트로 미리 만든 것”이라며 “가묘이지만 단속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무안지역 다른 곳에 시멘트 묘가 들어섰다가 최근 복구됐다. 무안군이 원상복구 명령을 내려 후손들이 다시 인조잔디 등을 깔았다.

전남 고흥의 한 종중 묘 9기는 봉분은 인조잔디로 덮고, 바닥은 시멘트를 깔고 초록색 페인트를 칠했다. 시멘트 묘가 멀리서도 눈에 띄는 데다 입소문이 퍼져 부담을 느낀 후손들이 페인트를 칠한 것이다. 고흥군 관계자는 “후손들이 내년에 시멘트 바닥에 인조잔디를 깔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흥의 또 다른 묘도 시멘트를 덮은 뒤 그 위에 인조잔디를 깔았다. 고흥군은 시멘트 묘지에 대해 원상복구 명령을 검토하고 있다.

다양한 시멘트 묘지가 생기는 것은 묘지 관리 어려움 외에 일부 농촌 노인의 화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전남 전체 주민의 19.2%(2012년 기준)가 65세 이상 노인이며 전남지역 화장률은 51.9%(2011년 기준)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시멘트 묘가 늘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장례 전문가들은 시멘트나 페인트, 석재, 인조잔디 등으로 덮은 묘는 시간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박복순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시멘트 등으로 묘와 주변을 덮을 경우 500∼100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아 환경, 미관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며 “자연장 등 환경도 살리고 추모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장묘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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