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 車-반도체 같은 ‘메이드 인 코리아’ 대표주자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의료관광산업,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자]<中> ‘K메디컬’ 차별화 전략 어떻게

6월 국내 대형 A성형외과는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병원 설명회를 열었다. 300여 명의 참석자를 예상하고 대형 행사장을 마련했지만 10여 명밖에 오지 않았다. 상담 부스도 텅 비었다. 이 병원이 지난해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같은 성격의 설명회를 열었을 때 참석자들이 200∼300석을 꽉 채우고 자리다툼까지 벌였던 것과는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다. 이 병원 김모 대표는 “한국에서 가슴성형을 받다가 의료사고를 당한 상하이 주민의 사연이 현지 언론에 크게 보도된 뒤 분위기가 돌변했다”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로 출범 5년째를 맞는 의료관광 산업이 기로에 섰다. 의료관광 산업을 달러를 벌어오는 전략적인 ‘서비스 수출’ 업종으로 육성하지 못하다 보니 외국인 환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관광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자동차 반도체와 같은 주력 제조업의 뒤를 잇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한 ‘산업 정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 4억 중국 중산층은 한국에는 ‘단비’

중국은 세계에서 중산층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나라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매킨지에 따르면 중국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중산층(연간 가처분 소득 1만6000∼3만4000달러인 계층)이 2020년 4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막강한 구매력을 가진 중국 중산층은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는 ‘가뭄 속의 단비’와 같다. 한국은 지금까지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의 수출로 성장해 왔지만 이들 산업이 언제까지 한국 경제를 떠받쳐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중산층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전략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한국에는 ‘필수’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취지에서 의료관광 산업을 차세대의 주력 서비스 수출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2009년 4725명에 불과했던 중국 의료관광객은 지난해 3만2503명으로 늘었다. 전체 의료관광객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어서면서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 의료관광 시장의 최대 고객이 됐다.

이런 추세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매킨지는 4월 내놓은 한국 보고서에서 “중국의 중산층과 부자들이 급증하면서 한국 의료관광이 성장했지만 이제는 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태국과 싱가포르에 뒤처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본보 취재팀이 지난해 해외 환자 유치 실적 상위 10개 병원을 조사한 결과 올 상반기(1∼6월) 중국인 환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증가율이 작년 상반기(50.7%)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 의료관광 산업 체질 확 바꿔야

의료관광을 주력 서비스 수출 상품으로 육성하려면 병원과 환자 알선업체의 난립부터 막아야 한다. 현재는 전문의 1명을 보유한 병원이면 누구나 보건복지부에 등록을 하고 외국인 환자를 받을 수 있다. 이런 병원이 3000여 개에 이른다.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춰 경쟁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품질 저하와 신뢰 하락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병원들은 불법 브로커와 공생 관계를 맺는다. 정부 등록 알선업체가 받는 수수료는 진료비의 10∼20%. 불법 브로커들은 진료비의 50%가 넘는 돈을 수수료로 뜯어낸다. 병원들은 비싼 수수료를 내기 위해 진료비를 부풀린다. 바가지 한국 의료관광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이유다.

정부가 병원과 알선업체에 대한 다양한 정보(시설과 인력, 서비스 만족도, 보험 가입 여부 등)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등급을 매겨 환자들이 믿을 만한 병원을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동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글로벌기획팀장은 “외국인 환자 알선업체의 경우 자본금 1억 원과 같은 등록기준을 낮추되 법 테두리를 벗어나 환자를 유치하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당근과 채찍’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 “안 되는 것 빼고 나머지는 다 풀어라”

수익사업 진출 규제를 풀어 중소병원의 경영난을 해소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노인의료복지시설, 주차장, 장례식장, 일반음식점, 이미용업, 휴게음식점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외의 부대사업을 하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태국의 붐룽랏 병원은 의료기관 투자유치 컨설팅,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개발, 임대업 등 다양한 수익사업에 참여해 연간 1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미국은 건강기능식품 제조 및 판매, 척추 전문 헬스클럽, 여행사, 사진관, 커피전문점 등의 운영도 허용한다. 일본도 1998년 특별의료법인 제도를 만들어 배식서비스업, 출판업, 목욕탕 등 12개 수익사업을 풀어줬다. 권영욱 의료재단연합회장은 “의료관광을 활성화하라면서 의료법인은 여행사도 하지 말라는 건 모순”이라며 “병원 규제부터 안 되는 것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다 풀어주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슈퍼리치(고액 자산가)’ 등을 유인할 만한 한국만의 차별화된 의료관광 패키지 상품을 개발해 ‘K메디컬’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 숙박 미용 검진 관광 통역 등을 하나의 에이전시가 책임지는 일본과 대만식의 ‘원 스톱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D성형외과에서 만난 중국인 왕푸 씨(31)는 “관광, 쇼핑, 미용, 숙박, 진료를 묶은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병원에 들러 진료만 받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청심국제병원 관계자는 “세계 유일의 관광자원인 비무장지대(DMZ) 투어가 포함된 4550만 원짜리 14일 의료관광 패키지를 개발했다”며 “화장품, 건강보조기구를 판매해 연간 20억 원의 부대 수익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용(경제부) parky@donga.com

▽팀원 문병기 장윤정 조은아(경제부)
염희진(소비자경제부)
유근형 이철호(교육복지부)


#의료서비스#K메디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