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남과 다른길 걷는다고 틀린 삶 아냐… ‘나’에 집중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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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기업 ‘눔(Noom)’ 정세주 대표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몸무게를 줄일 수 있을까?’

전 세계인의 이런 고민거리를 말끔히 해결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있다. 맞춤형 다이어트 팁을 제공하는 ‘눔 다이어트 코치’가 그것. 2011년 출시된 눔 다이어트 코치는 현재 미국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앱 장터인 ‘구글 플레이’의 ‘건강 및 운동’ 부문에서 매출 및 점유율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앱의 사용자들이 감량한 몸무게만도 총 1980만 kg(7월 17일 기준). 이 무게는 앱 개발사인 ‘눔’(Noom) 공식 홈페이지(www.noom.com) 첫 화면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미국인을 날씬하게 만들어준 이 다이어트 앱을 만든 주인공은 누굴까. 놀랍게도 그는 한국인이었다. 올해 33세인 젊은 최고경영자(CEO) 정세주 눔 대표.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 대표는 8년 전인 2005년 혈혈단신 미국 뉴욕 맨해튼으로 건너가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앱을 만들었다. 그의 성공 스토리가 궁금했다. 최근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맨해튼 첼시에 위치한 눔 본사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대학 졸업장 포기하고 미국으로

미국, 독일,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필리핀, 캐나다 등 8개국 출신의 직원 20여 명과 함께 일하는 정 대표. 그의 창업 스토리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사였던 아버지와 친척들의 영향으로 정 대표도 자연스럽게 의사를 꿈꿨다. 하지만 의대 진학에 실패하고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교 공부에서 재미나 동기부여를 찾지 못한 그는 결국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업에 눈을 돌렸다.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했던 정 대표는 당시 해외 희귀음반을 수입해 국내에 파는 사업을 했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1억 원을 벌 만큼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다 2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이때 아무 일도 못하고 ‘왜 사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제 인생을 되돌아봤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스펙’을 쌓는 것, 의미 없는 돈을 버는 일이 굉장히 사소하게 느껴지더군요. 제 능력을 살려서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정 대표)

정 대표는 “더 큰 세상을 꿈꾸며 인생의 리셋(reset)을 위해” 대학을 자퇴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25세 때였다.

“고등학교 졸업해서 명문대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는, 남들과 똑같은 ‘규격화’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남과 다른 길을 걸으면 그것을 ‘틀린’ 삶이라고 여기는 거죠. 주변 시선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안정적인 가치에만 인생을 걸면 무척 아쉽지 않을까요?”(정 대표)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눔 본사 사무실(위쪽). 눔의 직원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뷔페식 식사를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한다.

구글 ‘공짜밥’ 먹으며 도약 준비

처음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 정 대표의 영어실력은 형편없었다. 가져간 돈도 500만 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매사 긍정적이고 추진력 강한 그는 이웃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영어실력을 길렀고 당차게 사업도 시작했다.

처음은 뮤지컬 관련 사업이었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한 뮤지컬을 한국 무대에 올리려했다. 하지만 중간에 투자가 끊기는 바람에 빚만 잔뜩 짊어지고 뉴욕 할렘가로 쫓기듯 숨어들어갔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한 모임에서 우연히 구글 엔지니어를 만나게 된다. 현재 정 대표와 함께 눔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아텀 페타코브였다. 2006년부터 ‘스마트폰은 언젠간 뜰 것’이라고 예측한 정 대표와 ‘기술과 피트니스를 결합한 사업’을 제시한 페타코브는 동업을 결심한다.

정 대표는 당시 KOTRA 뉴욕지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페타코브는 구글에서 번 돈을 사업에 투자해 눔의 전신인 ‘워크스마트랩스’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창립멤버 4명과 함께 작은 원룸에서 ‘동거’를 시작하며 앱 개발에 몰두했다. 그는 구글을 자주 찾았다. 구글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네트워크도 다지고 사업방식도 배웠다. 구글에서 직원들에게 주는 ‘공짜 점심’을 직원들 사이에 끼어들어가 먹기도 했다. 그때 인연을 쌓은 구글의 직원 중 일부는 지금 정 대표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나를 생각하라. 사색하라

2008년 말, 워크스마트랩스는 스마트폰을 몸에 지닌 채 운동하면 자동으로 운동기록을 스마트폰에 남겨주는 ‘카디오트레이너’ 앱을 출시했다. 이 앱은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뉴요커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앱을 내려 받은 횟수가 1500만 건이 넘었고, 구글이 선정한 ‘2009년 베스트 안드로이드 앱’ 4개 중 하나로 뽑혔다.

2011년 출시한 ‘눔 다이어트 코치’ 앱도 성공적이었다. 이 앱은 사용자의 성별과 연령, 키와 몸무게, 식습관과 운동 빈도, 다이어트 실패 경험 등을 토대로 맞춤형 다이어트 팁을 준다.

특이한 점은 정 대표가 만든 앱의 평균 제작기간이 2년이라는 것. 보통 앱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인 6개월∼1년에 비해 2배 이상 걸렸다. 이는 정 대표가 많은 사람을 만나 그의 사업에 대한 ‘공격’을 받을 때마다 사업계획서를 수정했기 때문이다. 1000번 이상 거듭 수정했다.

“시행착오가 중요해요. 시도해보고 안 되는 것은 오류일 뿐 실패가 아닙니다. 오류가 나타나면 왜 그런지를 분석하고 다시 시도하면 됩니다. 될 때까지 계속해서요.”(정 대표)

정 대표는 도전을 앞둔 청년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요. 주위 시선,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등 주변 환경을 다 배제하고 오로지 ‘나’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정 대표)

뉴욕=글·사진 오승주 기자 canta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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