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酒 대리점주 “자살 李씨 유서는 사실… 밀어내기 관행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 배상면주가 ‘제품 강매’ 논란 확산 “본사서 목표량 할당… 반품 안 받아줘
현금 없어 부동산 담보제출 李씨… 물건 안팔려 재고-빚 늘자 많이 고민”
회사측 “일주일 단위로 정상거래”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막말 파문에서 시작된 대리점에 대한 제품 ‘밀어내기(강매)’ 논란이 전통주 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대표 전통주 제조업체 배상면주가의 대리점주 이모 씨(44)가 ‘밀어내기’를 비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따른 것이다.

▶본보 15일자 A12면… “배상면주가도 밀어내기”… 인천서 대리점주 자살

숨진 이 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대리점주 A 씨는 15일 통화에서 “이 씨가 남긴 유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며 “대리점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밀어내기는 관행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본사에서 대리점마다 일정한 판매 목표량을 할당하고, 돈을 입금하면 물건을 내줬다”며 “현금 대신 부동산 담보를 제출한 이 씨의 경우 최근에 전통주가 팔리지 않아 재고와 빚이 늘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서에 적힌 ‘행사’의 의미에 대해 “신제품이 나오면 본사에서 시음행사용 제품을 내려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리점이 본사에서 조그만 미니어처병에 든 판촉용 술과 물병, 술잔 등을 구입해 사은품으로 뿌려야 한다”며 “이것도 대리점에는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대리점 운영 현실과 관련해 그는 “전통주의 유통기한은 보통 2년이지만 제품을 다 못 파는 대리점이 많고 유통기한이 25일 안팎에 불과한 막걸리는 더 큰 문제”라며 “전통주 시장이 내리막길이어서 물량이 계속 쌓이는데 본사는 반품을 안 받아줘 결국 대리점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상면주가 측은 “밀어내기는 전혀 없었다”며 부인했다. 이 씨가 목숨을 끊은 것은 전통주 시장 환경 악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 씨는 한때 월 7000만 원대의 매출을 올렸지만 최근 1200만 원으로 줄어든 상태였다”며 “사정이 어려워진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회사가 자체적으로 장부를 조사한 결과 이 씨와는 일주일 단위로 정상적으로 거래해왔고 밀어내기로 보이는 거래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배상면주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류업계는 소주나 맥주와 달리 전통주 업계에선 밀어내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맥주나 소주는 법적으로 제조와 유통이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 하지만 전통주는 국세청 고시를 통해 제조업체가 유통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대리점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주나 맥주 제조업체는 허가를 받은 주류 도매업자에게만 판매할 수 있는 구조라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고 오히려 주류 도매업자의 협상력이 높을 때도 있다”고 전했다.

소주나 맥주에 비해 전통주의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도 밀어내기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막걸리 등 유통기한이 짧은 전통주를 만들다 보니 대리점에 ‘밀어내기’ 압박을 더 심하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이날 “거의 대부분의 식품업체가 밀어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20여 개 업체의 대리점을 상대로 피해 사례 조사를 벌인 뒤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하고 공정위 신고와 검찰 고발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씨의 자살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 삼산경찰서는 고인의 장례식이 끝나면 유족, 이 씨가 유서를 휴대전화로 보낸 대리점주, 배상면주가 관계자 등을 조사해 불공정 거래 혐의가 드러나면 회사 관계자들을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장관석 기자·인천=황금천 기자 jks@donga.com
[채널A 영상]밀어내기 종착지, ‘삥시장’이란?
[채널A 영상]자살한 배상면주가 대리점주 유서…“남양유업은 빙산의 일각”

#배상면주가#제품 강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