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이 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대리점주 A 씨는 15일 통화에서 “이 씨가 남긴 유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며 “대리점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밀어내기는 관행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본사에서 대리점마다 일정한 판매 목표량을 할당하고, 돈을 입금하면 물건을 내줬다”며 “현금 대신 부동산 담보를 제출한 이 씨의 경우 최근에 전통주가 팔리지 않아 재고와 빚이 늘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서에 적힌 ‘행사’의 의미에 대해 “신제품이 나오면 본사에서 시음행사용 제품을 내려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리점이 본사에서 조그만 미니어처병에 든 판촉용 술과 물병, 술잔 등을 구입해 사은품으로 뿌려야 한다”며 “이것도 대리점에는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대리점 운영 현실과 관련해 그는 “전통주의 유통기한은 보통 2년이지만 제품을 다 못 파는 대리점이 많고 유통기한이 25일 안팎에 불과한 막걸리는 더 큰 문제”라며 “전통주 시장이 내리막길이어서 물량이 계속 쌓이는데 본사는 반품을 안 받아줘 결국 대리점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상면주가 측은 “밀어내기는 전혀 없었다”며 부인했다. 이 씨가 목숨을 끊은 것은 전통주 시장 환경 악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 씨는 한때 월 7000만 원대의 매출을 올렸지만 최근 1200만 원으로 줄어든 상태였다”며 “사정이 어려워진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회사가 자체적으로 장부를 조사한 결과 이 씨와는 일주일 단위로 정상적으로 거래해왔고 밀어내기로 보이는 거래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배상면주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류업계는 소주나 맥주와 달리 전통주 업계에선 밀어내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맥주나 소주는 법적으로 제조와 유통이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 하지만 전통주는 국세청 고시를 통해 제조업체가 유통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대리점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주나 맥주 제조업체는 허가를 받은 주류 도매업자에게만 판매할 수 있는 구조라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고 오히려 주류 도매업자의 협상력이 높을 때도 있다”고 전했다.
소주나 맥주에 비해 전통주의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도 밀어내기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막걸리 등 유통기한이 짧은 전통주를 만들다 보니 대리점에 ‘밀어내기’ 압박을 더 심하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이날 “거의 대부분의 식품업체가 밀어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20여 개 업체의 대리점을 상대로 피해 사례 조사를 벌인 뒤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하고 공정위 신고와 검찰 고발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씨의 자살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 삼산경찰서는 고인의 장례식이 끝나면 유족, 이 씨가 유서를 휴대전화로 보낸 대리점주, 배상면주가 관계자 등을 조사해 불공정 거래 혐의가 드러나면 회사 관계자들을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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