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거부하면 양육권 행사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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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엄마의 집행신청 기각… “아빠랑 살겠다” 6세 의사 존중

결혼한 지 3년 만인 2008년 갈라선 A 씨(42)와 B 씨(39·여)는 이혼 당시 2세에 불과했던 아들을 6개월씩 번갈아가며 키우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남편 A 씨가 약속을 어기고 6개월이 지난 뒤에도 아내에게 아들을 보내지 않자 다시 둘 사이에 법적 다툼이 벌어졌다.

B 씨는 A 씨를 상대로 “친권자와 양육자를 다시 지정해 달라”고 소송을 냈고, 법원은 조정 내용을 지키지 않은 A 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2009년 12월 결정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서울중앙지법 소속 집행관 최모 씨는 2010년 3월 A 씨의 집에 찾아가 아이를 데려오려 했지만 A 씨가 아들을 껴안은 채 완강히 맞서 데려올 수 없었다.

B 씨는 “남편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아이를 데려올 수 없으니 남편이 없는 유치원으로 가서 데려와 달라”고 다시 법원에 요구했다. 결국 지난해 6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법원은 집행관을 보냈지만 그때도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행관들이 아이에게 “엄마와 함께 살겠느냐”고 물었지만 “아빠와 같이 살겠다”고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의 결정은 ‘아이를 데려오라’였지만 강제로 데려오면 아이가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고, 교육상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집행관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법원 역시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손흥수 판사는 B 씨가 “법원의 유아 인도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낸 이의 신청을 5일 기각했다. 손 판사는 “여섯 살 3개월인 아이가 특별한 제약 없이 스스로 본인의 의사를 표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내린 집행관의 결정은 위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유아를 인도해야 하는 사건에서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 인간의 도리를 강조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아이거부#양육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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