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한 것 후회… 엄마 미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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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7층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앞 복도, 말썽꾸러기들이 책상에 앉아 반성문을 쓴다

스윽스윽…. 책상과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복도. 펜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정민아(가명) 양의 손등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친구와 남의 물건을 훔쳤습니다. 그깟 꾸미는 건 어른 돼서 하면 되는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우는 걸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 때문에 속앓이 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제가 이런 짓을 했는데도 편 들어주시고 맛있는 것과 옷도 사주시는 걸 보면…. 저를 쓰레기 취급해야 마땅한데 그렇게 대해주시니까 너무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학교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7층 복도.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안미영)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청소년들이 반성문을 쓴다. 오토바이 스마트폰 절도, 학교폭력, 성폭력…. 소년법 49조3항에 따라 검사는 선도를 받게 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 반성문이 대수로울 리 없다. 서너 줄 쓰고 키득거리며 돌아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7월 부임한 김윤영 검사(44·사법연수원 32기)는 물었다. “너는 꿈이 뭐니?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니?” 아이들이 고민해 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모르겠는데요.”

김 검사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싶었다. 반성문을 통해 9가지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한 일, 잘못한 일 △가장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엄마, 아빠, 그 외 가족에 대한 생각 △꿈 △검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분량은 범죄 유형과 전력, 면담 태도에 따라 2∼10장을 쓰게 했다. 장수를 듣는 아이들 표정이 일그러진다. 조사 중에도 삐딱하게 앉아 김 검사를 째려본다. 같이 온 부모는 자식에게 짜증 섞인 말을 듣고도 한숨만 내쉰다. 김 검사는 한 방을 더 날린다. “내용이나 글씨에 반성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새로 써야 해. 양이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어.”

책상 앞에 앉은 아이들은 자신이 한 일을 떠올려 본다. “엄마 아빠가 이혼했는데 집안 모든 게 다 싫어 가출했습니다. 친구 2명과 한 친구를 때렸습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의 기분도 생각했어야 하는데….”

“사람을 절대 때리면 안 되는데, 제 친구들을 욕하는 바람에 욱해서 그랬습니다. 다시는 감정에 치우쳐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잘못한 일은 학교에서 몰래 담배 피운 것, 전화 안 받고 집에 안 들어간 것, 학교 안 간 것, 가출한 것, 2학년 때 후배들 돈 뺏은 것입니다. 하지만 3학년 때 동급생 친구를 때린 게 제일 잘못한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생긴다. “정신 차려서 엄마한테 최고의 딸이 될 수 있게 행동할게요. 너무 미안하고 항상 고맙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 속을 무척 썩였습니다. 폭력은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못 지켜서 너무 죄송합니다.”

“사고 쳐서 안양소년분류심사원에 3주간 있었는데, 매일 면회 오는 엄마 눈이 부어 있었다. 나는 면회시간 15분 동안 눈물만 흘렸다. 죄송합니다.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이제 절대 나쁜 짓 안 하고 호강시켜줄게. 사랑해.”

자신의 미래 모습도 다짐해 본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늦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제 인생을 180도 바꾸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일(폭행)을 벌이게 될수록 제 꿈(축구선수)을 이루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운동으로 기른 체력을 괴롭힘당하는 친구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경찰이 돼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잡아주고 싶습니다. 저도 그런 말 듣지 않았지만 계속 말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고민해 보는 것들이다. 다 쓰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린다. 김 검사가 민원대기실에 들어가서 쓰라는데도 아이들은 굳이 복도 책상에 앉는다. 한동안 펜을 잡고 집중하는 모습…. 복도 소파에 앉아 바라보는 부모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진다. 눈물을 훔치는 부모도 있다.

김 검사를 찾아와 더 혼내 달라는 엄마도 있다. “오토바이 좀 못 타게 해주세요.” 반성문을 받아든 김 검사는 모르는 척 아이에게 다짐을 받아낸다. 사무실 전화번호도 적어준다. “어머님, ○○이가 약속 안 지키면 연락하세요.” 증명서 개념으로 반성문을 복사해 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멋쩍은 듯 웃는다. 검사실에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다른 눈빛이다.

김 검사는 “소년범과 면담하는 건 닫혀 있는 마음을 여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며 “무서운 것도 거칠 것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달라질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말썽꾸러기들이 자기 고백을 하게 만드는 반성문은 다른 검찰청에도 전파되고 있다. 안미영 부장검사(47·여·25기)는 “반성문 한 번으로 아이들을 바꿀 순 없지만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반성문#성범죄#아동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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