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말만 노점… 떼돈 버는 부자” vs “종일 일해도 月 140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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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노점과의 전쟁’으로 몸살 앓는 서울
‘컵밥 철거’ 이후 갈등 악화

분식집 바로 앞 포장마차 분식 가게와 노점 포장마차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한 골목. 대표적인 노점 밀집 지역인 이곳은 “임차료와 세금도
 안 내는 노점상이 손님을 빼앗아 간다”라는 상인들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일 뿐”이라는 노점상 간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분식집 바로 앞 포장마차 분식 가게와 노점 포장마차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한 골목. 대표적인 노점 밀집 지역인 이곳은 “임차료와 세금도 안 내는 노점상이 손님을 빼앗아 간다”라는 상인들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일 뿐”이라는 노점상 간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25일 낮 고시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의 한 포장마차. 기자가 수첩을 들고 들어서자 김상임 씨(53·여) 부부는 핫바를 만들던 손을 멈추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는 “구청 직원이 철거 공문을 들고 온 줄 알았다. ‘31일’까지 철거하라는 구청 직원의 말이 계속 떠올라 잠을 못 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 ‘컵밥 철거’ 이후 갈등 깊어져


동작구는 23일 새벽 노량진 일대 ‘컵밥’ 노점 4곳을 강제 철거했다. 학원가 일대 50여 개 노점에는 31일까지 자진 철거하라는 공문을 전달했다. 컵밥은 이 일대 노점상들이 김치볶음밥 등을 컵에 담아 2000∼3000원에 파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 덕에 수험생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인근 식당 상인들은 “세금과 임차료도 안 내는 노점상이 손님을 다 빼앗아 간다”며 꾸준히 민원을 제기해왔다. 우선 철거된 노점 4개는 일대 컵밥 노점 13개 중 민원이 집중됐던 곳이다.

철거 이후 이곳 상인과 노점상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 있었다. 김 씨는 “상인들이 우리보고 ‘서민 시늉을 하면서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버는 재벌’이라고 한다는 데 분통이 터진다”며 “오전 10시부터 하루 13시간을 일해도 한 달에 140만 원밖에 못 번다”고 했다. 수험생의 주머니 사정에 맞추다 보니 마진이 10%대에 불과하다는 것. 김 씨는 “이렇게 일해도 돈이 없어 딸 셋 중 한 명도 대학에 못 보냈고 월세방에 살고 있다. 강제 철거를 당해도 먹고살 길이 없어 다시 노점을 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상인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핫바 노점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9.92m²(약 3평) 규모의 토스트 가게를 하고 있는 박은아 씨(42·여)는 손님이 없어 빈 철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 달 반 전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250만 원에 가게를 열었다. 매출은 하루 평균 10만 원으로 월세 내는 것도 벅차다. 박 씨는 노량진역 앞 토스트 노점과 인근 간식 노점이 손님을 뺏고 있다고 여겼다. 박 씨는 “수백만 원씩 월세를 내면서도 노점 가격에 맞춰 음식을 팔 수밖에 없다”며 “노점에서 산 토스트를 들고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쓰리다”고 했다.

○ ‘노점과의 전쟁’…“대안 필요”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노점상 수는 9292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만큼 상인과 노점상 간 대립이 서울 곳곳에서 일어난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구가 동대문 남평화시장 앞에 있던 노점 24곳을 철거했다. 철거에 투입된 굴착기 앞에 노점상이 드러눕고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구 관계자는 “종업원을 23명이나 두고 한 해 수억 원을 버는 ‘기업형 노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종로구도 2011년 인사동 거리 북쪽에 위치한 노점 16곳을 철거하려다 마찰을 빚었다. 구는 노점상에게 인근 공터로 옮길 것을 요구했지만 노점은 “공터는 인적이 드물다”며 이주를 거부했다. 여러 차례 몸싸움을 벌인 끝에 2011년 9월 노점을 인사동 남쪽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노점상들은 협의 과정 없는 일방적인 철거가 갈등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일방적으로 철거해봐야 생계가 막막한 노점상들이 과태료를 낸 뒤 다시 도로로 나온다는 것. 전국노점상연합 조덕휘 수석부회장은 “강제 철거를 하기 전에 구와 노점, 상인 3자가 만나 영업시간 및 품목 조정 등 조정 절차를 거쳐 상생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법의 잣대만 들이대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인이나 자치구 관계자들은 “노점 자체가 불법인데 협의나 상생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기업형 노점상과 생계형 노점상을 구별해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원구의 경우 다음 달부터 생계형 노점상을 인정하는 정책을 쓸 예정이다. 노원구는 재산규모가 2인 가구 기준 2억 원 이하인 생계형 노점상을 선별해 1년 단위로 최장 5년까지 노점을 허용하기로 했다. 노점 폭을 제외한 보도 폭이 2.5m 이상의 큰 인도에서만 허용하고 도로 점용료를 받는다. 김성환 구청장은 “노점을 단속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 보고 대처해야 시민 상인 노점이 모두 ‘윈윈’할 수 있다”며 “기업형 노점상 철거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노점을 아예 등록제로 만들어 노점 운영이 가능한 구역을 설정해 난립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노점상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 노점, 질 낮은 노점이 난립한다”며 “지자체가 도시계획 차원에서 운영 시간, 판매 가능 품목, 운영 자격, 판매대 규격 등 조건을 정한다면 도시 경관 중 하나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널A 영상] ‘강남역 노점’은 월세 300만원?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노점#컵밥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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