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떻게’가 빠진 사회적 대타협 공약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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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성 강조하지만 실현 가능성 떨어져

“합의만 된다면 무리가 있더라도 정부가 따르겠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5월 2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노사정위원회 회의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일자리, 복지 등 산적한 문제를 정부 노동계 경영계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사회적 대타협은 노동계의 ‘대표’ 중 하나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불참 등으로 결국 실패했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정부 고위공무원은 “사회적 대타협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작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과 사전정지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대선후보들 이구동성으로 대타협 필요성 강조

주요 대선후보 캠프들은 최근 일자리 창출의 방법으로 한결같이 ‘사회적 대타협’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참여 주체 등의 구체성 등에서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사회적 대타협론(論)을 들고 나온 건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 그는 후보 선출 다음 날인 올 9월 17일 첫 일정으로 일자리 간담회를 열고 “정부와 기업, 노동자들이 함께 협력해 국가적 차원의 대타협을 이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지난달 21일 노동 관련 공약을 발표하며 “경제주체 대표와 정파를 초월한 인사들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민 대타협 합의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최근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상생공존의 새로운 경제 생태계 창출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사회적 대타협 시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들이 앞다퉈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이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된 지금 가장 손쉽게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한 고용노동부 고위 당국자는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하락했고 성장을 해도 고용이 크게 늘지 않는 현실에서 차기 정부가 일자리를 더 만들려면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대타협의 틀 미리 준비해야”

차기 정부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실제로 성공시키려면 대선후보들이 구체적인 관련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회적 대타협의 참여 주체, 논의 주제, 진행 일정 등을 공약으로 제시해 국민들의 투표로 권한을 위임받아야 정권 출범 후 사회적 대타협 논의가 힘 있게 추진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회적 대타협 논의는 정권 초에 시작하지 않으면 임기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참여 주체와 관련해서는 전체 근로자의 3∼4%만을 대표하는 한국노총, 민주노총 외에 소외된 노동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청년층과 비정규직, 실업자 등 노동 약자”라며 “이들의 대표를 참여시키는 큰 그림을 그려야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과)는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 등의 입장을 다시 묻고 이들을 포함시키는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대선#정책#사회적 대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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