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 누명’ 처형된 민간인도 국가가 유족에 손해배상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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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빨치산 토벌 중 희생 전라도 유족 173명에 21억

6·25전쟁 초기 빨치산 토벌작전 중 국군에게 사살된 민간인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군이 전시 작전과정에서 빨치산 협력자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형했다는 이유로 배상이 인정됨에 따라 논란이 예상된다. 국군이나 인민군이 양민을 집단으로 처형한 대규모 학살사건들과는 별개로 양측이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부역자 등의 이유로 민간인을 처형한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 법원이 여기에 ‘적법절차’라는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우재)는 1950년 8월∼1951년 6월 전라도 일대에서 펼쳐진 빨치산 토벌작전 중 국군 제11사단에 사살된 민간인 임봉수 씨 등의 유족 17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1억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25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군인들이 희생자들의 신체의 자유와 생명권, 적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고, 희생자와 유족은 그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원고들이 남북분단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받았을 차별과 경제적 궁핍, 오랜 세월 동안 물가와 소득수준이 크게 상승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정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은 희생자 본인은 8000만 원, 배우자는 4000만 원, 부모 및 자녀는 1000만 원, 형제들은 500만 원 수준이다.

2009년 3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번 판결의 희생자들에 해당하는 ‘전남지역 11사단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비무장 민간인들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빨치산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사살됐다”고 밝혔다. .

2008년 6월 ‘거창 양민학살’ 사건에서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나 국가의 배상책임은 없다”고 판결했지만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유족들이 제때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희생자와 유족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큰 반면 국가가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5월 광주지법은 ‘함평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함평사건은 1950년 겨울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에 의해 전남 함평군 해보면 등 3개면 양민들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반면 이번 판결은 제11사단 20연대와 9연대가 전라도 일대에서 작전을 펴며 빨치산 부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한 판결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양민학살#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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