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줄여 노후자금 만들려했더니… 베이비부머 깨져버린 은퇴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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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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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하락폭 소형의 10배… 수도권 4년새 매매차익 15.6% 줄어



7년 전 은퇴한 뒤 서울 서초구의 전용면적 142m² 아파트를 떠나지 않았던 이모 씨(65)는 몇 달 전 같은 단지의 99m²로 옮겼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만으로는 자녀 결혼비용을 포함한 부부 두 사람의 생활비를 대기가 빠듯했기 때문이다.

집을 줄여 2억 원의 돈을 마련했지만 이 씨는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2, 3년 전만 해도 142m² 아파트를 99m²로 줄이면 4억∼5억 원을 거뜬히 손에 쥘 수 있었지만 대형 아파트는 팔리지 않고 소형은 인기가 오르면서 차익이 급감했다”며 “왜 은퇴 뒤에도 관리비와 세금이 많은 큰 집에서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국내외 변수들이 기존 ‘은퇴 공식’의 효력을 계속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특히 국내에서 대형보다 소형 주택의 인기가 올라가고 저금리 추세가 오래 이어지는 점이 대표적인 변수로 꼽힌다.

○ 아파트 가격 급등지역 하락폭 커

앞서 이 씨의 사례는 기존의 ‘정년 후 생활 모델’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수도권 전역에서 사는 집의 크기를 줄여 그 차액으로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하던 은퇴 공식이 점점 들어맞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전용 112m² 아파트를 59m²로 줄인다고 가정할 때 2008년 3억9086만 원이던 평균 매매차익은 10월 현재 3억2999만 원으로 6087만 원(15.6%) 줄었다. 특히 분당, 평촌, 일산, 산본 등 경기지역 1기 신도시 4곳의 평균 매매차익은 1억 원(26.0%) 감소해 수도권에서 가장 큰 하락폭을 나타냈다.

또 송파(21.9%), 양천(17.5%), 강남구(16.9%)처럼 2000년대 중반 전국의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도 평균 매매차익이 크게 줄었다. 반면에 서울지역의 평균 매매차익 감소는 12.6%에 불과했다.

이영호 닥터아파트 리서치연구소장은 “평균 매매차익 감소 규모가 1억 원 이상인 서울 강남구와 경기 과천, 평촌, 분당 등은 과거 대형 아파트 위주로 가격이 강하게 상승했던 곳”이라며 “이들 지역에서는 중대형 비중이 높고 대형 아파트 위주의 집값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매매차익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 소형 인기에 저금리 겹쳐 노후 위협

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가격이 더 많이 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대형보다 소형 주택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으로 저금리 추세가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 은퇴자들의 생활을 더욱 옥죄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대형 아파트는 노후자금이 급한 은퇴자들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전용 95.9m² 이상(아파트, 연립, 다세대주택 포함)인 대형 주택 가격은 0.7% 떨어졌다. 같은 기간 62.8m² 미만의 소형 주택 가격은 오히려 18.5% 상승했다.

또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는 2008년 9월 이후 현재까지 전용 60m² 이하 소형 아파트 가격은 0.86% 하락했다. 하지만 85∼135m²의 중대형 아파트 값은 9.45% 떨어져 소형보다 10배 가까이 하락폭이 컸다.

더구나 이제 은행 예금금리가 2%대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한국은행이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기준금리가 2.75%까지 떨어졌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말∼내년 초에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저금리 추세가 이어지면 같은 액수의 노후자금을 만들기 위해 저축해야 할 금액과 기간이 훨씬 늘어나 은퇴 통로를 더욱 좁아지게 한다. 2008년에는 매월 100만 원씩 21년을 저축하면 5억 원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26년이 걸린다. 또 2008년에는 20년 저축해 5억 원을 마련하려면 월 110만 원이면 됐지만 지금은 월 148만 원이 필요하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넘쳐나는 유동성이 부동산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 교수는 “1, 2인 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로 대형 아파트 가격 하락이 원인이 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소형 아파트 전세나 주택연금 고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로 주택 크기 축소 수요는 급증한 반면에 부동산 시장 침체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형 아파트를 급하게 팔면 재테크와 노후 준비 모두 실패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그 대신 △살던 집을 전세로 주고 소형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거나 △주택연금을 활용하거나 △담보대출이 있다면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 대출이자를 줄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베이비부머 사이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려는 현상이 퍼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대형 아파트의 ‘소화불량’이 나타나고 있다”며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매매차익을 거둘 수 없다면 부동산 경기 회복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김진웅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주택연금은 집값이 하락해도 연금액이 줄지 않기 때문에 보유 주택의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은퇴자에게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베이비부머#은퇴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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