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강력범 ‘치료감호 15년 상한’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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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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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 감호법 개정안 발의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괴물이 커져 버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안성훈 박사가 정신질환 범죄자 관리 실태를 연구하기 위해 지난해 말 만난 공주치료감호소 수감자에게 들은 말이다.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한 수감자는 그에게 “나도 내가 통제가 안 된다. 밖에 나가면 돌봐줄 가족이 없으니 국가가 나를 잘 치료해 달라”고 사정했다.

현행법상 치료감호소에 있는 정신질환자는 완치 여부와 상관없이 15년까지만 수용된다. 장기 복역한 정신이상자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많지 않다 보니 이들은 사회에 나오면 대부분 방치된다. 정신이상 상태에서 살인 강간 등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치료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출소 후엔 별다른 치료 프로그램이 없고 보호관찰 대상도 아니다. 재범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어 공포감을 주는 이 ‘시한폭탄’은 가족을 향해 터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정신질환 살인범 중 49.2%는 가족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6일에는 정신분열증을 앓던 18세 아들이 어머니에게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경찰을 피해 3층에서 뛰어내리다 숨졌다.

○ 15년 치료감호 기간 제한 폐지 추진

최근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와 여당이 치료감호법 개정에 착수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등 여당 의원 10명은 치료감호기간을 15년으로 한정한 현행 규정을 없애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개정안을 법무부와 협의해 4일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살인 성폭력 강도 방화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는 기간 제한 없이 ‘감호의 필요성이 없을 정도로 치유될 때까지’ 치료감호 하도록 했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완치 때까지 출소시키지 않고 강제 치료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권 의원은 “재범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하면 최근 정신이상자의 ‘묻지 마’ 범죄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대신 위험 정도가 낮은 정신질환자는 ‘가종료’ 상태에서 조기 출소시키되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정신보건센터에서 정기 진료와 사회복귀 훈련을 받도록 강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들 대부분이 정신장애 잔류 증상이 있어 후속 치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돼 곧바로 재범으로 연결될 가능성 높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의 재범 비율은 32.1%로 일반 범죄자(24.3%)보다 8%포인트 높다. 하지만 일부에선 치료감호기간의 상한선을 없애면 정신이상자를 국가가 영구 격리할 수 있어 인권침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치료감호 가종료자들은 출소 후 3년간 보호관찰을 받지만 단순 동향 파악에만 그치는 실정이다. 치료감호소 출소자는 본인이 원하면 10년까지 무료로 외래진료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이 제도 이용률은 10%에도 못 미친다. 2008년 한 해 가종료자 1200명 가운데 6회 이상 방문 진료를 받은 사람은 100명 미만에 불과했다.

○ 의사 1인당 환자 수 선진국의 6배

치료감호 기능 강화 방침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열악한 인프라 개선이 급선무다. 완치가 안 됐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를 계속 붙잡아 두면 수용인원만 늘어나 치료감호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치료감호 시설은 공주치료감호소가 유일하다. 수용인원은 952명인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고작 10명으로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95.2명이다. 정원은 15명이지만 그나마 5명이 모자란 상황. 업무가 과다하고 보수가 적은 탓이다.

병실도 선진국은 1, 2인실이 대부분이고 최다 5인실이지만 한국은 70명을 같은 공간에 수용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수용자가 너무 많아 의사가 매일 회진해도 28일에 한 번밖에 환자를 보지 못한다”며 “수용 가능 인원도 2014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주별로 별도의 정신질환 범죄자를 치료하는 병원을 운영하고 공립정신병원에 특별병동을 설치해 운영한다. 캐나다 독일 역시 대학병원 등 민간 정신병원 일부를 치료시설로 지정해 의료진을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독일 등 선진국의 의사 1명당 환자 수는 15∼20명 선으로 한국의 6분의 1이다. 최근 치료감호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연구원에 제출한 안 박사는 “거점도시별로 치료감호소를 설치하거나 5개 국립정신병원에 정신장애 범죄자들을 분산 수용해 치료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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