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우리말, 흉기로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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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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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돌 한글날… 몸으로 찍은 세계 최대 판본 566돌 한글날을 기념하는 ‘2012 한글문화축제: 세계 최대 인간 판본 몸찍기’가 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한글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이번 퍼포먼스에는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대학생들이 직접 몸에 먹을 묻히고 45×20m의 대형 천에 ‘한글, 한뜻, 한국’이라는 세 단어를 새겨 넣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566돌 한글날… 몸으로 찍은 세계 최대 판본 566돌 한글날을 기념하는 ‘2012 한글문화축제: 세계 최대 인간 판본 몸찍기’가 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한글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이번 퍼포먼스에는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대학생들이 직접 몸에 먹을 묻히고 45×20m의 대형 천에 ‘한글, 한뜻, 한국’이라는 세 단어를 새겨 넣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공부도 못하는데 커서 뭐 될래?” “부모님이 백수니? 수학여행 갈 돈은 있어?”

서울 동대문구 경희여중 3학년 1반에서 가시 돋친 말이 쏟아졌다. 실제 상황은 아니었다. ‘차별과 편견의 말을 넘어’를 주제로 9일 오후 시작된 국어수업 시간의 역할극에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과 ‘경제가 어려운 학생’이라는 머리띠를 둘렀던 학생들이 말했다. “화가 나서 때려주고 싶었다” “전학을 가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시우 양(15)은 한부모 가정의 학생으로 나섰다. 친구들은 “집에서 못 배운 게 티 난다” “엄마가 없으면 그러냐”고 얘기했다. 김 양은 “내가 정말로 그런 처지에 놓여 그런 말을 듣는다면 하루하루가 살기 힘들 것 같았다”고 말했다. 외모가 특이하거나 말수가 적은 경우도 역할극에서 놀림의 대상이 됐다.

학생들은 40분 남짓한 짧은 수업이었지만 친구의 마음에 남는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임은진 양(15)은 “장난으로 한 말, 무심코 뱉은 말이 주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수업을 지도한 강용철 교사(37)는 평소에 학생들을 ‘예슬이’라고 부른다. 예쁘고 슬기로운 이들이라는 말이다. 그는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기 위해서는 입이 고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두 번의 수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여중 3학년 1반 교실에서 학생들이 어떤 말을 하면 친구가 상처받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역할극을 하고 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여중 3학년 1반 교실에서 학생들이 어떤 말을 하면 친구가 상처받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역할극을 하고 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경희여중은 고운 우리말을 권하는 동아리 ‘너나들이’의 활동을 통해 바른말 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송파구 평화초등학교 4학년 2반은 이날 오전 ‘편견 없는 말하기’라는 주제로 수업을 했다. 학생들은 ‘정말 너무해’라는 글을 먼저 읽었다. 글 속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예은이는 키가 크고 뚱뚱하다. 돼지 같고 고릴라 같다고 해서 별명이 ‘돼릴라’다. 운동회 응원단이 되고 싶었지만 친구들은 날씬하고 예쁜 아이들만 할 수 있다며 예은이를 무시한다.

이계현 교사(42)의 설명을 듣기 전에 20명의 학생들은 이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아차렸다. 외모로 친구를 놀리는 일이 평소 교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서. 한석진 군(10)은 “뚱뚱한 모습이 나쁜 것이 아닌데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된다. 당하는 친구는 속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40분의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은 느낀 점을 표어로 만들었다. 정윤경 양(10)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영원토록 상처 남아’라고 적으면서 “친구를 놀리는 말은 물론이고 욕도 안 쓰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속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66번째 한글날인 이날 초중고교 8곳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지원으로 이런 수업을 했다. 이재곤 한국교총 교권부장은 “최근 발표된 설문조사를 보면 학생의 70% 이상이 차별적인 언어 사용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었다. 학생 사이에 만연한 욕설을 줄이고 올바른 말을 쓰도록 이끄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한글날#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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