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일제, 일본어가 ‘국어’라며 시골까지 강제 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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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제 연구가 심정섭 씨, 일제시대 강습회 고지서 공개

일제강점기인 1942년 8월경 전남 순천군 쌍암면(현재 순천시 승주읍)의 한 마을. 정모 군(당시 나이 14세) 등 마을 10, 20대 남녀 4명이 일본어 강습회 고지서를 받았다. 강습회는 국가 등에서 단체나 개인에게 지식, 기능을 습득시키기 위해 개최하는 집회다.

강습회 고지서 4장은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이며 친일문제 연구가인 심정섭 씨(69)가 한글의 날을 맞아 8일 공개했다. 고지서는 세로 17.2cm, 가로 13cm 크기로 쌍암면장이 발송한 것이었다. 고지서는 강습회에 참여해 일본어를 배우도록 독려하는 내용이다. 강습회 기간은 1942년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이었다. 만약 이 기간에 일본어 강습회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쌍암면장에게 신고를 하고 재수강 기간을 반드시 정하라는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일제는 당시 일본어를 ‘국어’라고 지칭하며 한글은 ‘조선어’라고 평가절하했다. 친일 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하부조직을 시골 마을별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일본어 배우기를 강요했다. 또 법령을 개정해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을 폐지하고 학생들에게도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했다. 일제는 고지서 발송 4개월 뒤인 1942년 10월경 한글 연구를 하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선생 등 30여 명을 투옥시키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한다. 철저히 조선인의 글과 정신을 말살하는 정책이 절정에 달한 것이다.

고지서는 일제가 조선어를 말살하고 그 대신 일본어를 배우도록 집요한 강제 정책을 썼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다. 시골 주민들에게까지도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일제는 1943년 3월까지 일본어 강습회를 6만2389차례 열어 223만 명이 수강토록 할 정도로 한글 말살 정책에 혈안이었다. 심 씨는 “영국이 인도를 200여 년간 지배하면서도 인도어를 말살하지 않았는데 유독 일제만 한글 말살정책을 폈다”며 “당시 일본어 강습회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들은 강제노역이나 벌금 등에 시달리는 고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순천#일제강점기#한글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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