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카카오톡에 교사·경찰·전문가 총집합, 학교폭력 해결사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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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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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채팅방 생성해 ‘질의응답’의 장 만들어
24시간 문 열어 피해 상담하고 해결책 공유

카카오톡을 활용해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박영오 경장(왼쪽)과 송형호 교사.
카카오톡을 활용해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박영오 경장(왼쪽)과 송형호 교사.
《“중1 남학생 집단 7∼15명. 성교육 전문가를 급히 구합니다.”(오전 9시 8분)

“(김현수 교수 연락처와 함께) 김현수 교수께 문자로 요청해 보세요. 강서 정신보건센터장이시고 관동대 명지병원 교수로 소아 청소년 전문의십니다.”(오전 9시 38분)

16일,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가 스마트폰 무료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 대화방에 질문을 올린 지 30분 만에 답변이 왔다. 100명이 넘는 교사와 경찰 등이 참여하는 이 채팅방에는 수시로 학교폭력에 대한 질의응답과 관련 정보가 오간다. 올해 3월 이 그룹 채팅방을 처음 만든 주인공은 지금 서울시교육청에 파견근무 중인 서울 면목고 송형호 교사(영어)다.》

○ 교사와 경찰, 학교폭력 해결 위해 채팅방으로 모이다

송 교사가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카카오톡을 떠올린 것은 올해 2월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되면서부터. 학교폭력 가해자 학생의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이 시행되면서 송 교사는 교육현장에 혼란이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일선 교사들이 ‘학생의 폭력사실을 어떤 절차에 따라 기록해야 하는지’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어떤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 등에 대해 모호해할 것이기 때문.

그래서 송 교사는 카카오톡을 ‘상담 창구’로 활용했다. 송 교사는 각종 교사연수에 참여해 “카카오톡을 통해 학교폭력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선생님들은 연락을 달라”고 했고, 3월 대화방이 개설되자 교사 60명이 곧바로 참여했다. 이 모임이 점점 확대되면서 지금은 서울시 중고교 생활지도부장, 경찰, 청소년 상담센터의 상담원과 연구관에서부터 교육과학기술부의 과장과 국장에 이르기까지 총 139명이 참여하는 소통의 장으로 진화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질문에 송 교사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채팅방이 진행됐다. 시간이 지나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협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교사들이 “폭력 가해 학생이 끝까지 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경찰은 학교폭력 수사 노하우를 바탕으로 ‘어떻게 증거와 진술을 확보할지’를 알려주었다. 또 한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학교폭력 때문에 가해 학생에게 사회봉사를 시켰는데도 효과가 없다”고 고민을 털어놓았고, 한 상담전문가는 가해학생의 행동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학교폭력 가해자의 학부모가 “내 아이를 강제로 전학시키면 나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생활지도부장을 위협한 것. 이에 놀란 부장 교사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SOS’를 요청했고, 스쿨폴리스(학교전담 경찰관)의 도움으로 해당 학부모가 전문상담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고 안내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 카카오톡으로 365일 24시간 학교폭력 접수


카카오톡을 학교폭력 접수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찰서도 생겨났다.

‘117 학교폭력신고센터’가 생기기 전 경기 수원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는 전국 최초로 카카오톡을 통해 24시간 학교폭력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폭력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피해신고가 활성화되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의 신고를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유미경 경관이 ‘카카오톡 신고접수’란 아이디어를 냈다. 익명성이 보장될 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가진 학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서부서의 카카오톡 폭력신고접수는 박영오 경장이 전담한다. 카카오톡으로 오는 쪽지 대부분은 학교폭력 신고보다는 상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쪽지가 가장 많이 오는 시간대는 0시부터 오전 1시 사이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면 박 경장은 경찰관의 신분에서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형’ 또는 ‘오빠’로 변신한다고. 박 경장은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면 따돌림이나 폭력으로 힘들어했던 학생의 마음이 어느새 누그러져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느 날 새벽, 한 여학생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몇 년 동안 수시로 언어적으로 놀림을 받은 것도 폭력을 당했다고 볼 수 있나요?”

같은 학교 남학생들이 이 여학생의 채팅 닉네임을 보고 “못생겼는데 왜 귀여운 닉네임을 만들었느냐. 역겹다”며 괴롭혔다. 이 여학생은 “다른 사람에겐 대수로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몇 년 동안 계속 같은 놀림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 남자애들만 봐도 피해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여학생이 폭력을 당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스마트폰 캡처 화면 등)가 부족했고, 해당 여학생도 남학생들에게 언어폭력으로 맞대응했기에 ‘처벌’까지는 어렵다고 판단한 박 경장. 하지만 여학생의 고통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그는 가해 남학생 3명을 경찰서로 불렀다. 남학생들을 “장난이었는데 친구가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다.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면서 반성문을 쓰고 귀가했고 이후 여학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글·사진 이영신 기자 l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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