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시도자 응급실까지 찾아가 이야기 들어주니… 재시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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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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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5개 구청 예방프로그램 큰 성과

올해 6월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에 70대 박모 씨가 실려 왔다. 거리를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하던 박 씨가 충동적으로 음독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전이라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박 씨에게 구청 소속 정신보건상담사가 찾아와 상담을 권했다.

박 씨는 위기관리프로그램을 통해 8주 동안 집중 상담을 받았다. 그는 사기를 당해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이후 박 씨는 상담사의 도움으로 말소됐던 주민등록을 되살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했다. 상담프로그램이 끝난 뒤 노숙인쉼터를 임시 보금자리로 삼은 박 씨는 다시 자살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7명(201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9년째 1위다. 관악 성북 노원 강서 은평구 등 서울 5개 자치구는 계속되는 자살을 막기 위해 예방프로그램을 운영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살 시도자를 응급실 단계부터 접촉하는 것이다. 관악구는 올해 5월부터 동작구 보라매병원에 정신보건 요원을 매주 월 수 금요일 오전 상주하도록 했다. 자살 시도자를 직접 만나 상담을 권하면서 상담에 동의한 비율이 1∼4월 26.6%에서 5∼7월 69.2%로 뛰었다. 관악구 정신보건센터의 오선숙 정신보건 요원은 “자살 시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상담을 받도록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일단 상담을 시작하면 ‘이렇게 모든 걸 털어놓을 사람이 있었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마음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성북구의 경우 정신보건센터 소속 직원이 정기적으로 오전에 각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자살 시도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3∼7월 13명을 상담했고 이들 중 아직까지는 자살을 재시도한 사례가 없다. 은평 노원 강서구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관내 소방서, 경찰서와 협력해 자살 시도자가 있으면 상담사가 현장에 함께 출동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3∼7월 상담한 자살 시도자는 모두 453명, 이들이 받은 상담 횟수는 2355회나 된다.

자살 시도 이유가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 간의 갈등, 정신과적 문제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구청들은 각자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학교폭력이 문제면 청소년지원센터와 연계해 상담해 주고, 생활고가 문제면 구청 복지과를 통해 지원제도를 찾아주는 식이다. 관악구는 학교가 많은 지역 특성에 맞춰 학생들에게도 지킴이 교육을 하고 저소득층, 홀몸노인이 많은 성북구는 자살 예방을 위해 복지 분야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해 종합대책을 수립하기도 한다.

이들 구청은 자살자 유족관리 프로그램과 자살고위험군 조기발견을 위한 자살예방지킴이 교육도 하고 있다. 자살예방지킴이 교육을 받은 인원은 5개 구 통틀어 15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교육을 받은 뒤 각 구 정신보건센터로 자살이 걱정되니 상담해 달라며 의뢰한 인원은 3∼7월에만 42명에 달한다.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검증된 자살예방방법을 각 구 특성에 맞게 적용하고 있다”며 “중간평가를 통해 각 구에서 효과가 좋았던 방법을 5개 구에 통일되게 적용해 보고, 앞으로 서울시 25개 구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자살#위기관리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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