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작은 다툼도 ‘우리끼리’ 현명하게 해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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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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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초교의 또래조정위원회

《학교폭력은 많은 경우 학급 친구들 사이의 작은 갈등에서 시작된다. 사소한 말다툼이 주먹싸움으로 번지거나 가벼운 뒷담화가 심각한 집단 따돌림을 불러오기도 한다.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속상한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이는 부모님도, 선생님도 아니다. 또래 친구다.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가 교내 갈등의 ‘해결사’로 나서준다면 어떨까.

여기, 그런 해결사가 있는 학교가 있다. 2009년부터 ‘또래조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인천 연수구 인천연수초. ‘또래조정’이란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또래 학생이 조정자가 돼 대화로 해결하도록 돕는 활동.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학교폭력 예방대책의 하나로 ‘또래조정 시범학교’ 사업 추진 방안을 밝히면서 인천연수초를 우수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인천 연수초는 2009년부터 ‘또래조정위원회’를 운영해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또래학생이 직접 해결하도록 돕는다.
인천 연수초는 2009년부터 ‘또래조정위원회’를 운영해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또래학생이 직접 해결하도록 돕는다.
또래조정위원은 반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학급당 3명씩 지정된다. 이 중 교사 추천을 받은 5, 6학년 학생 12명은 전교생 대상의 학교 또래조정위원으로 활동한다. 교실의 ‘또래조정함’에 조정 신청 쪽지가 들어오면 일주일 안에 곧바로 ‘출동’한다.

○ 내 샤프 고장 내놓고 안 사주다니!”

“지금부터 인천연수초 또래조정위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7월 초 인천연수초 또래조정상담실에선 모의 또래조정위원회가 열렸다. 참가자는 또래조정을 신청한 학생(신청자)과 그와 다툰 학생(피신청자), 또래조정위원 3명. 위원 중 1명은 위원장, 다른 2명은 각각 신청자와 피신청자 측 위원이다. 이를테면 원고, 피고, 판사, 각 측 변호사가 모인 작은 법정인 셈.

이날 갈등은 샤프펜슬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설정됐다. 신청자 역할을 한 6학년 차민서 군(12)이 “제 자리에 신혜은 학생이 앉았다 간 뒤 샤프가 떨어져 고장이 났는데, 보상을 요구했지만 거부했다”면서 신청 사유를 밝혔다. 이에 피신청자 역할을 한 6학년 신혜은 양(12)은 “일부러 고장 낸 것도 아닌데 크게 화를 내니 나도 감정이 상했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방금 말이 사실인가요?” “왜 사과하지 않으셨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나갔다. 서로 화난 이유를 알게 된 두 학생은 화해를 하고, 신 양이 차 군에게 새 샤프를 사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 우리 역할은? 대화 이끌어내기!

또래조정위원회가 이런 절차를 거쳐 실제로 해결한 사건은 올해 들어 10여 건. ‘축구공을 빌려가서 잃어버린 친구가 새 축구공을 사주지 않는다’ ‘휴대전화로 내 사진을 몰래 찍어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놀린다’ ‘급식시간에 새치기를 했다’ 등 사연도 다양하다.

학생 자치활동이지만 위원회가 소집되는 절차는 매우 체계적이다. 화가 난 친구가 또래조정함에 신청 쪽지를 넣으면, 3인 1조로 구성된 또래조정위원은 담당교사와 함께 갈등 내용을 정리하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상의한다. 그 다음 정해진 날짜에 위원회가 열려 화해가 이뤄지면, 이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작성하고 끝난다.

이때 또래조정위원의 핵심 역할은 신청자와 피신청자의 입장을 각각 대변해 주면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

‘소통’이 목적이란 점에서 잘잘못을 엄격히 따져 처벌이나 판결을 내리는 법정과는 다르다. 당사자들이 상대방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고, 스스로 평화롭게 화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 ‘속상했겠다’… 공감이 우선

쉽지는 않다. 학생들이 위원회 중에도 계속 싸우는 바람에 또래로서 통제하기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무척 속상했겠군요’라면서 그들의 화난 마음을 달래고 공감해주는 일이 필수적이다. 학생들이 일단 분노를 가라앉혀야만 비로소 진심을 털어놓으며 상대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담 및 조정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전교생 대상의 학교 또래조정위원들은 매주 수요일 교육을 받는다. 각자 실제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갈등상황을 설정한 뒤 이에 대한 조정 시나리오를 직접 써보는 것. 이 시나리오를 다른 위원들 앞에서 발표한 다음 담당교사에게 ‘질문을 어떤 식으로 해야 더 효과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갈등 해결에 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등을 피드백 받는다.

6학년 이수현 양(12)은 “친구와 싸운 일을 선생님에게 말씀드리면 솔직히 혼날까봐 걱정될 수 있다”면서 “또래조정 위원은 같은 친구 입장에서 마음을 헤아려주니 학생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5학년 양승규 군(11)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 말을 들어줄 또래가 항상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친구들이 위안을 얻는 것 같다”면서 “또래조정위원으로 열심히 활동해 왕따와 학교폭력이 없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글 사진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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