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울·무기력…설마 내 아이가 ‘중3병’?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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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의 절정 ‘중3병’

최근 우울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청소년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중학교 교실.
최근 우울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청소년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중학교 교실.
서울에 사는 중2 이모 양(14)은 최근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뛴다”며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담당의사는 ‘스트레스성 우울증’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 양이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컴퓨터를 쓰는 시간이 통제가 안 되면서 성적이 떨어졌다”면서 그 스스로 학교 상담실을 찾기 전까지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성적이 반에서 10등 안에 들던 그는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이었다.

상담 결과 이 양이 알코올에 의존적인 어머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트레스가 쌓이자 우울해지며 점차 무기력해진 이 양은 친구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졌고 온라인 게임과 온라인 음악 동호회 활동에 빠져들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댓글로 가치도 인정해주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는 이유였다.

○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 5년간 2.5배 늘어

우울·위축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청소년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신나는 공부’가 한국청소년상담원을 통해 확인한 ‘2007∼2011년 만 9∼24세 대면상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상담건수 중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한 사례의 비율은 2007년 8%(479건)에서 2011년 20.5%(607건)으로 2.5배 이상으로 늘었다. ‘상담주제’도 2010년까지는 ‘대인관계’가 19.1%로 가장 높았지만 지난해부터는 정신건강이 1위를 차지했다.

이영선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는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한부모나 재혼 가정에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면서 “맞벌이의 영향으로 부모와 자녀간 대화 시간이 줄고 깊이도 없어지면서 청소년 우울문제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 성적 우수한 모범생 내 아이가 우울?

최근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에서도 이른바 ‘중3병’을 호소하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 중3병은 공부와 대인관계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중학생이 무기력해지며 정신건강에 문제를 호소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3학년에서 우울감이 절정에 이른다는 의미로 ‘중3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성적이 우수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모범생’으로 통하는 학생 중에 중3병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학생들은 겉으로는 잘 표가 나지 않는 ‘가면성 우울’의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학부모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서울지역 중학교의 전문상담교사 윤모 씨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일수록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마음의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면서 “3월에는 성적 상위권인 2학년 여학생이 돌연 ‘눈물이 나고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등교하지 않고 청계천에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3 김모 양(16)은 최근 불면에 시달리고 밥을 거의 못먹지만 부모는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김 양은 “3월에 내신 성적을 200점 만점으로 환산해 보니 목표한 학교에 진학하기 힘들 것 같은데, 만약 떨어지면 그동안 준비한 게 와르르 무너질까봐 불안해 잠이 안 온다”면서 “학원을 3개 다니며 오전 2시까지 공부하는데 엄마는 ‘잘 버티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 무기력해진 중학생, 게임·아이돌스타에 집착

최근엔 대입 입학사정관전형이 확대되면서 빨리 진로를 결정해야 입시에 유리하다는 인식 때문에 진로를 놓고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을 호소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중3 천모 양(15)은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중학교 때 미리 진로를 정해야지 고1이 돼서 결정하면 늦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마땅히 뭘 할지 모르겠어서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우울감에 시달리는지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자녀가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몇 가지 징후가 있다.

우울감에 빠져 무기력해지면서 성적이 떨어지거나 학교 과제를 하지 않거나, ‘짜증난다’ ‘재미없다’ 같은 말을 자주 쓰거나, 평소 좋아하던 취미활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 대표적. 또 게임에 빠지거나, 아이돌 스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많다.

박승민 숭실대 상담심리전공 교수는 “많은 부모들이 중학생 자녀의 표정이나 행동이 달라지면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기면서 우울의 징후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대화를 시도하고 여의치 않으면 전문상담시설의 무료전화나 학교의 전문상담교사를 통해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이영신 인턴기자 l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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