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방황하라 그리고 이기주의자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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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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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인재교육 도입… 대입에 영향 미칠 가능성 높아져
전문성 없는 융합인재는 실패… “시작 늦어도 하고 싶은 일 찾아라”

《융합인재’의 시대가 열렸다. 정부는 최근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 등을 융합한 이른바‘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 교육을 확대했다. 지난달에는 일선 학교에 80개 스팀 리더스쿨 및 120개 교사연구회가 선정됐다. 스팀교육은 단계적으로 정규수업에 도입될 예정이다. 대학들은 융합학과인 △지식융합학부(서강대) △소프트웨어융합 전공(아주대) △글로벌융합공학부(연세대) △창의IT융합공학과(포스텍) 등을 잇달아 개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모집단위의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융합인재의 소양을 갖춘 학생이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융합인재는 무엇이고 어떻게 융합인재의 소양을 갖출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울산 달천고 석송이 양(18)은 세계적 진화생물학자이자 ‘통섭’의 과학자로 불리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울산 달천고 석송이 양(18·오른쪽)에게 융합인재가 되려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체험활동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아름다운 방황을 하라”고 조언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울산 달천고 석송이 양(18·오른쪽)에게 융합인재가 되려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체험활동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아름다운 방황을 하라”고 조언했다.
○ “한 우물 파면 성공한다고?”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사람.’ 최 교수는 융합인재를 ‘한 가지 일의 전문가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를 공부해서 자신의 일에 적용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한 우물을 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움직이는 애플의 고 스티브 잡스나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 등은 모두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융합인재입니다.”

최 교수는 융합인재는 ‘시대적 요구’라고 했다. 의학기술이 발달해서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현재 학생들은 직업을 평생 7번 정도 바꾸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운 좋게 7번 모두 직업을 갖게 될 확률은 0.00001%도 안 됩니다. 한 분야만 공부한 사람은 언젠가는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는 겁니다.”

융합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두루 해야 할까? 최 교수는 “한 우물도 팔 줄 모르면서 다른 우물을 기웃거리는 건 바보”라면서 “진정한 융합인재는 확실한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한다”고 했다.

○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

최 교수는 융합인재가 되려면 “아름다운 방황을 하라”고 조언했다. 공부할 시간을 조금 줄이더라도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체험활동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석 양은 “공부하기도 바쁜데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고교생도 많다”고 물었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최 교수의 답변이 돌아왔다. ‘시작은 다소 늦어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교수 자신이 바로 그 증인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고3 때 대입에 실패했다. 서울대 의예과에 지원했다 떨어져 재수를 했다. 다음해에 의예과에 재도전했지만 의예과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서울대 동물학과에 진학했다.

원하던 학과가 아니었기에 공부는 뒷전이었다. 최소한의 전공필수 수업만 들으며 인문대 수업을 들었다. 독서동아리 활동에 열중하며 사진동아리 회장도 했다. 그랬던 그는 대학 4학년 때 과학철학서인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을 읽고 생물학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꿈을 찾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뒤처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찾은 뒤 ‘사람은 왜 잠을 자야 할까’를 고민할 정도로 공부했어요. 파나마에서 불도 들어오지 않는 하루 5000원짜리 방에서 잘 때는 벌레들이 몸 위를 기어 다녔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죠.”

최 교수는 “1초도 남을 위해 안 산다”며 자신을 ‘지독한 이기주의자’라고 했다. 요즘도 하루 종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 목적이 이끄는 공부… 1년 반 만에 영어 정복

최 교수는 학부모들이 조금 시간이 걸려도 자녀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깨닫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고 했다. 시작은 늦어도 공부의 목적을 찾으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1년 반 만에 영어를 정복했다. 그는 대학 때까지 영어회화를 못했다. 하지만 진로를 결정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생각이 바뀌었다. 진화생물학자로 동식물을 연구하려면 아프리카 등지에 가서 외국학자들과 대화를 해야 하고,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데도 영어는 필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길을 걸을 때도 중얼중얼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했어요. 주위에서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오해할 정도였죠. 영어를 빨리 배우고 싶어서 미국 남부 출신 친구의 말을 성대모사 하듯 따라하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미국 남부지역 사투리를 해요.(웃음)”

○ 융합인재, ‘기획독서’로 뚫어라!

최 교수는 융합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기획독서’를 하라고 했다. 자신이 관심 있는 책만 골라 읽지 말고 여러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으라는 것. ‘수학에 자신이 없으니 인문계열로 가야지’라는 식의 생각은 융합인재가 되는 걸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다. 자신이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효과적인 것이 바로 독서다.

시사교양 PD가 장래희망인 석 양은 “독서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학과공부나 비교과 활동으로도 시간이 빠듯한 현실에서 폭넓게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러자 최 교수가 말했다.

“인생에서 자기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이 몇 개나 되겠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간접경험의 폭을 넓혀보세요.”

글·사진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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