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2년… 추모현장 가보니]46용사 잠든 대전현충원 추모게시판엔 메모지 달랑 6장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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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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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광성고 학생들이 선배 나현민 상병을 추모하는 천안함 전사장병 사진전을 관람한 뒤 헌화하고 있다(왼쪽). 천안함 46용사가 묻혀 있는 대전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9일 천안함 용사 콜라주 벽보를 세웠다. 천안함 용사들을 기리는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도록 했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해 썰렁한 상태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광성고 학생들이 선배 나현민 상병을 추모하는 천안함 전사장병 사진전을 관람한 뒤 헌화하고 있다(왼쪽). 천안함 46용사가 묻혀 있는 대전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9일 천안함 용사 콜라주 벽보를 세웠다. 천안함 용사들을 기리는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도록 했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해 썰렁한 상태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지난해 추도식에는 국회의원에 지역 주민들도 찾아왔는데…. 올해는 민망할 정도로 조용하네요.”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광성고 강당을 찾은 학교 관계자는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학교는 2년 전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희생된 나현민 상병이 2009년 졸업한 학교다. 천안함 2주기를 맞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나 상병을 기리는 추도식이 열렸지만 분위기는 1년 전과 사뭇 달랐다.

지난해에는 재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지역 국회의원, 지역보훈단체장 등 관내 기관장 10여 명과 지역 주민까지 찾아와 강당을 가득 채웠다. 학교에서 추도식을 따로 홍보하거나 초청장을 돌린 것도 아니었지만 나 상병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국가보훈처에서 보내 준 군악대는 1시간 넘게 이어진 추도식에서 경건한 추모곡을 연주했다.

하지만 지난 1년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2주기 추도식장은 썰렁했다. 심지어 나 상병의 부모조차 오지 않았다. 나 상병의 아버지 나재봉 씨(54)는 “올해는 총선도 있고 다들 바빠서 참석하는 외부인사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학교로부터 미리 전해 들었다”며 “아들과 천안함에 대해 관심이 식은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재학생과 교직원, 일부 학부모만 참석한 추도식은 나 상병의 약력 소개와 학생 대표의 발표, 묵념 순으로 30분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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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대회의실에 특별히 마련한 ‘천안함 46용사 추모사진전’도 관람객이 없어 텅텅 비어있었다. 사진전에는 나 상병이 고교 시절 체육시간에 찍은 사진과 졸업 사진 등이 전시돼 있었다. 엄재유 교장(59)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학교 설명회 기간과 전시 기간이 겹친 덕에 학부모들이라도 보고 간다”며 “그마저 없었다면 자칫 재학생들만의 조촐한 행사가 될 뻔했다”고 말했다.

썰렁하기는 천안함 46용사가 묻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도 마찬가지였다. 대전현충원은 천안함 폭침 2주기를 맞아 추모문화행사를 19일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열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19일 오후 현충문 앞 잔디광장에는 천안함 용사들에게 보내는 추모 메시지를 붙여 놓을 수 있는 게시판이 들어서 있었다. 가로 5.4m, 높이 1.8m 규모의 게시판을 추모 문구를 적은 포스트잇으로 메우는 이벤트였다. 손바닥 크기의 포스트잇 수천 장을 붙여도 모두 채우기 어려운 크기였지만 지난 이틀간 붙은 포스트잇은 6장이 전부였다. 포스트잇에는 ‘46용사를 낳아주신 어머니, 당신이 영웅입니다’ ‘천안함 용사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등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이날 게시판 앞에서 만난 노지윤 씨(22·여·전북대 3년)는 “아버지가 병무청 공무원이고 오빠가 군인이라 천안함 사건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며 “내 또래의 젊은 청년들에게 이런 비극이 발생했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함께 온 강진주 씨(19·여·충남대 1년)는 “예상보다 호응이 없는 것 같다”며 “더 많은 사람이 이번 행사에 참여하도록 대학생 기자로 활동하는 병무청 블로그에도 글을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기자가 20일까지 1박 2일간 현충원에서 만난 일반인 추모객은 이들을 포함해 6명뿐이었다. 그마저 모두 퇴역 군인 또는 그들의 가족이었다. 대전에 있는 딸의 집에 놀러왔다가 부인 사위와 함께 참배하러 왔다는 권모 씨(80)는 “3대째 직업군인으로 복무해왔다.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청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얼마 전 예편한 남편을 췌장암으로 먼저 떠나보냈다는 백은복 씨(57)는 “현충원 산책로는 남편 생전에도 함께 자주 거닐던 곳인데 생각보다 빨리 남편을 이곳에 묻게 됐다. 오늘은 남편도 보고 천안함 용사들의 묘도 둘러보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아들인 박정훈 병장의 묘역을 청소하러 현충원을 찾은 아버지 박대식 씨(53)는 “지난해에 비해 추모객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 더 잊혀지지 않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천안함 2주기를 기념하려는 군부대와 공공기관 등의 단체 방문은 줄을 이었다. 20일 하루 공수부대와 농협중앙회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중앙민방위방재교육청 관계자들이 잇달아 현충원을 참배했다. 임직원 40여 명이 함께 찾은 농협중앙회 측은 “천안함 용사와 한주호 준위 묘역에 헌화했다”며 “2주기가 되니 국민적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데 이렇게 단체로라도 오면 좋을 것 같아 왔다”고 했다.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 추진체 등이 전시돼 있는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에도 단체 방문이 줄을 이었다. 중구 신당동 어린이집에서 찾아온 어린이 30여 명은 기념관 2층 로비에 전시된 어뢰 추진체 앞을 한참동안 떠나지 못했다. 어린이집 교사 장신애 씨(39·여)는 아이들에게 “해군 아저씨들은 우리를 지켜주려다 전사한 것”이라며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용감한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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