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강압 있었지만 반환시효 지나”

  • Array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 김지태 씨의 유족이 “정수장학회 설립 과정에서 강제로 기부된 아버지의 주식을 돌려 달라”며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강압으로 재산이 넘어간 사실은 인정했지만 시효가 지나 반환청구는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판사 염원섭)는 김 씨의 장남 영구 씨(74) 등 6명이 제기한 주식양도 등 청구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24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1962년 당시 박정희 정부의 강압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문화방송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주식을 증여하게 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당시 김 씨가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주식을 증여할 정도로 강박이 심했다고 보긴 힘들어 증여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강박에 따른 의사 표시에 대한 취소권은 그 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며 “증여가 이뤄진 1962년 6월 20일로부터 10년이 지났으므로 제척기간이 지나 취소권이 소멸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원고 측에서는 김 씨의 차남인 영우 씨(70)가 재판정을 찾았다. 판결 직후 영우 씨는 “실망스럽지만 어차피 대법원까지 가야 할 싸움이라고 생각했다”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돈보다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장학회 명칭에 아버지의 아호인 ‘자명’을 붙여서라도 맨 처음 장학금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 문제에 대해 “만들어진 과정에 문제는 있지만 장학회가 4만 명 이상의 고급 인재를 길렀다는 점은 인정한다”며 “장학회는 유지돼야 하고 이미 장학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장학회를 만든 것이 아니므로 사과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박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선 “그렇다면 박 대통령 부부의 이름을 딴 장학회 명칭도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수장학회가 특정 여성의 치마폭에서 놀아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거취에 대해선 “남의 거취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부산지역 기업인으로 2, 3대 민의원을 지낸 김지태 씨는 1962년 부정축재처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다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문화방송과 부산일보 주식 100%와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 토지 33만여 ㎡(약 10만 평)를 국가에 강제 기부당했다. 이 재산을 기반으로 5·16장학회가 설립돼 이후 박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 자씩 따 정수장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김 씨 유족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6월 이 사건에 대해 “국가는 공권력의 강요로 발생한 재산권 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