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근무평정 투명하게” 법원 4곳 판사회의 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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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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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호 재임용 탈락 후폭풍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계기로 법관 근무평정과 재임용 심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판사회의를 여는 법원이 늘어나고 있다. 소장파 판사들을 중심으로 기존 법관 평가방식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 법원, 판사회의 확산 움직임


서울에서는 중앙지법과 서부지법 남부지법이 17일 단독판사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들 법원은 재임용 심사 및 근무평정 제도의 공정성과 개선 과제를 주요 안건으로 채택했다. 경기지역에선 수원지법이 21일 단독판사회의를 열기로 했다. 또 서울북부지법 등 다른 수도권 법원 소속 판사들도 판사회의 개최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서울북부지법에선 박삼봉 법원장이 단독판사회의를 준비하는 판사들을 불러 판사회의 개최를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법원 측은 “법원장이 판사 2, 3명을 불러 면담한 것은 맞지만 집단행동에 나서기보다 신중히 처신해 달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 판사회의는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시위 재판 개입 논란 때보다 확산 강도는 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판사가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는 것보다 법관 평가제도의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법관 정기인사가 27일자로 예정돼 있어 남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부족한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9년 당시 들끓었던 법원 내부 게시판도 이번 사안과 관련해선 조용한 분위기다.

반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통합진보당, 참여연대 소속 관계자 20여 명은 14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의 연임 탈락 결정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 판사 근무평정 어떻게 이뤄지나


판사 근무성적평정규칙에 따르면 법원장은 소속 판사들에 대해 재판장의 의견을 물어 매년 1회 평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근무평정에는 △사건 처리율 △처리기간 △상소율 △파기율 △파기사유 △성실성 △청렴성 △친절성 등 평가항목이 모두 포함된다. 2004년까지는 ABCDE 5등급으로 평가했지만 2005년부터는 상중하 3등급으로 평가를 간소화했다.

일반적으로 판사의 근무평정은 12월 초중순경 이뤄진다. 재판장은 함께 일하는 배석판사에 대한 의견서를 법원장에게 제출한다. 법원장은 이를 토대로 평정표 안에 긴 문장으로 해당 법관에 대한 평가를 적어 넣는다. 길게는 수십 쪽에 이르는 평정표에는 ‘판례에 해박하다’ ‘판결문을 잘 쓴다’부터 ‘술을 마시면 늦는 버릇이 있다’는 등 다양한 평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근무평정, 투명하고 공정하게”


상당수 판사가 “10년간 비밀스럽게 근무평정을 한 뒤 재임용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요지만 보여주고 소명하라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정 결과뿐 아니라 평정의 구체적 기준과 원칙, 세부항목 등을 공개하지 않다 보니 평가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중시하는 법원에서 정작 법관의 방어권은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수도권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2004년에 법관 개개인에게 근무평정 결과를 공개하고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했지만 부작용이 심해 판사들의 논의를 거쳐 현행 제도로 고쳐진 것”이라며 “현행 제도를 무조건 악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 사법파동으로 번지지는 않을 듯


다만 법원 안팎에서는 이번 논란이 다섯 번째 사법파동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단 판사회의를 열기로 한 법원 4곳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데다 주요 의제가 특정 인물이 아닌 제도라는 점에서 예전 논란과는 다르다. 또 이전 사법파동에서 소장 판사들과 대법원이 대립각을 세웠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대법원이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에서 개선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판사들의 제안과 건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로선 판사회의가 6곳의 고등법원(특허법원 포함)과 18곳의 지방법원(행정법원 1곳, 가정법원 2곳 포함)에서 모두 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한국은 법관을 임용할 때 인성 등 다른 자질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을 주된 요건으로 보는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근무평정을 바탕으로 법관 재임용 제도를 강화해 법원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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