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영재가 대학 갈 땐 너도나도 의대로,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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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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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계 피하는 ‘과학의 미래’

올해 서울대 수시모집 최연소 합격생인 배형규 군(16·서울과학고)이 연세대 치의예과에 등록한 것은 ‘과학 영재’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이공계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과학고 출신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도 심각한 것으로 밝혀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과학 영재가 의대 영재로


과학고 출신 가운데 서울대 연세대 등 상위권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배 군이 졸업할 예정인 서울과학고의 경우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졸업생은 2010학년도와 2011학년도에는 각각 10여 명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수시모집에 합격해 이미 두 대학 의대 진학을 결정한 학생이 17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시모집 합격자가 발표되면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졸업생들은 2009년 과학영재학교로 지정된 뒤에 입학한 학생들이어서 ‘과학영재 양성’이라는 영재학교 본래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세대 의예과에 다니는 한 학생은 “최근 수시모집 합격 예비 신입생 환영모임에 갔다가 서울과학고 출신이 3분의 1 가까이 돼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과학고 출신들이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후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2015학년도부터 대부분의 대학이 의전원을 폐지하기로 해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의전원 막차’를 타려는 학생도 적지 않다. 과학고 출신인 A 씨는 서울대 생명과학부를 3년 만에 졸업하고 2012학년도 서울대 의전원에 합격했다.

이런 학생들은 학점을 빨리 따기 위해 동아리활동 같은 대학생활은 아예 접고 학기당 허용된 이수 학점을 꽉꽉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계절학기까지 수강하는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대학가에선 이렇게 학점에 다걸기하는 학생들을 ‘옵세’(사로잡힌다는 뜻의 영어 obsess를 줄인 말)로 부르기도 한다.

○ 올림피아드 국가대표도 이공계 기피


‘두뇌 올림픽’인 올림피아드 대회에 한국을 대표해 나가는 최고 수준의 영재들마저도 이공계를 기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할 국가대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한화학회에 따르면 매년 4명씩 선발하는 국가대표 가운데 의예과 진학자는 △2007년 1명 △2008년 3명 △2009년 2명이었지만 2010년과 지난해에는 선발된 학생 전원이 의예과로 진학했다. 최근 5년간 국제화학올림피아드 국가대표 20명 중 화학을 전공한 학생은 6명에 불과하다.

국내 최고 과학영재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대학뿐만 아니라 학계, 산업 전체의 ‘이공계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명환 서울대 자연대 학장은 “이공계가 의사 등 다른 전문직에 비해 직업안정성이 낮다는 사회인식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며 “일단은 국가가 다양한 지원정책을 만들어 이공계 학생들의 직업안정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공계 인력은 국가발전과 기업성장의 희망”이라며 “기업들도 이공계 인력들을 ‘부품’ 정도로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가치 있는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연구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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