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를 무죄로 바꾼 ‘기형 물건’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 서울대 대학원 후배 성폭행, 1심 3년6월→2심 무죄


서울대에서 논문을 지도하는 대학원 선배가 여자 후배를 성폭행했는지를 두고 1, 2심 재판부가 180도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한 뒤 피고인을 법정 구속했지만 2심 재판부는 재판 도중 피고인을 보석으로 석방한 뒤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본보 6월 27일자 A13면 “네게 지식 주는데… 너는 뭘 줄래?”


○ “성폭행 뒤 성추행도 여러 차례”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던 B 씨(여)가 논문지도 선배인 박사과정 연구원 A 씨(35)를 고소한 것은 지난해 6월. B 씨는 “지난해 3월 3일 내 원룸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학내에서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했다. 또 B 씨는 “‘아내가 아기에게 몰두해 있어 관계가 소원하니 욕구를 풀어 달라’는 등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 1심 “구체적 진술, 경험 없이 불가능”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영훈)는 올해 6월 “B 씨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렵다”며 A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 씨의 일부 기억이 명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가볍게 술을 마신 후 갑작스럽게 당한 피해자가 범행 발생 3개월이 경과한 후에 범행 당시 일상적 사실들을 모두 정확하게 기억해내기 어려운 점으로 미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지 3개월 뒤에 뒤늦게 고소한 점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피해자와 단둘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면서도 별도의 숙박시설을 예약하지 않은 점과 이에 따라 결국 단둘이 학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몰리자 논문지도 선배를 고소하게 된 경위도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2심 “통증 심할 텐데 소리 안 지르나…”


1심 선고 직전 합의를 요구하던 A 씨 측은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고 방어에 나섰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를 포함해 전관(前官) 출신이 대거 보강됐다. 변호인단은 A 씨의 신체감정 결과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선천적으로 발기 시 성기가 왼쪽으로 60도, 아래쪽으로 30도 휘어지는 음경만곡증(페이로니씨병)이 있어 삽입 시에는 한 손 이상의 보조가 필요하고, 상대방에게 강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최재형)는 15일 “성기의 기형 때문에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잡고 삽입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피해자가 그런 상황에 대해 언급이 없어 B 씨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신체적 특성상) 성폭행을 당할 당시 상당한 통증을 느꼈을 텐데도 단순히 옆방에 들릴 것을 우려해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는 점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대법원 최종 판단은?


B 씨는 재판부의 무죄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증거 채택을 인정한 신체감정 결과의 신빙성부터 의심했다. 그는 “그렇다면 피고인의 부부 관계는 어떻게 해왔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재판부가 피고인이 성폭행 당시 성기를 손으로 잡았는지 물어봤지만 내가 어떻게 볼 수 있었겠는가”라며 답변을 강요하는 재판부를 비판했다. 또 “피고인이 음경만곡증이 있는데도 피해자가 당시 통증을 못 느꼈고 2∼3분 만에 사정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고 이를 근거로 무죄를 내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나아가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성폭행당한 순서를 한 번에 일목요연하게 얘기하지 못했다고 해서 성폭행이 갑자기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B 씨는 즉각 상고했다. 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맡게 됐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