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 ‘南-南 분열’… 죽은 김정일이 대한민국 갈라놓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 서울대-덕수궁 앞 설치 싸고 갈등 잇따라

국내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올해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농생대 학생 박선아 씨(22·여)와 박 씨의 친구라고 밝힌 남학생 2명은 26일 낮 12시 6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학생회관 1층에 김 위원장의 분향소를 설치했지만 학교 측이 곧바로 철거했다. 박 씨 일행은 책상 위에 노란 국화꽃 한 다발과 향로를 올려놓고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잡고 높이 들어올리고 있는 사진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분향소 설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김상범 학생과장이 박 씨에게 다가가 “캠퍼스 이용 규정에 의해 시설물 설치는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 분향소는 그러지 못했다”며 “고지한 대로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박 씨는 “하루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10여 분간 논쟁을 벌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러났으며 낮 12시 18분 곧바로 청원경찰들이 분향소를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청원경찰 10여 명과 수십 명의 취재진이 뒤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앞서 박 씨는 23일 중앙도서관 주변에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공동선언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 소식에 조의를 표한다”며 분향소 설치를 제안하는 대자보를 실명으로 게재했다. 이후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는 “같은 서울대생인 것이 수치스럽다”는 등 비난 여론이 들끓었으며 본부 측도 설치를 만류했다.

분향소가 철거된 직후 박 씨는 “원래 몇 시간만 설치해놓을 계획이었다”며 “다시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국내에 김 위원장을 조문할 수 있는 곳이 한 곳도 없는 현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이 남북관계에 대해 발전적인 논의를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이달 초 투표율 미달로 무산된 총학 선거에 ‘반값 등록금’ 시위를 주도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계열 후보로 출마했으며 1학년 때인 2008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박 씨는 “(분향소 설치는) 한대련과 상의 없이 혼자 진행한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안법으로 입건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결성한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모임’은 26일 오후 5시 반 서울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추모를 위한 서울분향소를 설치하려다 경찰과 보수단체 회원 200여 명의 제지로 무산됐다. 이들은 “다른 장소를 물색해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