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교육현장 리포트]억대 연봉·개인차량 제공… 고교 교사 스카우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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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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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계 고등학교 진학상담교사 A 씨는 올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지방에 있는 자율형사립고 두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A 교사는 자율형사립고 측이 고용한 헤드헌터와 인터뷰한 뒤 한 번은 교감직을, 또 한 번은 교장직을 제안 받았다.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현재 연봉의 3배에 달하는 억대 연봉과 고급 차량을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추천을 받고 찾아왔는지를 비밀에 부친 헤드헌터는 “지방생활을 위한 아파트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실력이 뛰어난 다른 교사들도 추천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A 교사는 “요즘 들어 일부 고교교사를 대상으로 자율형사립고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스카우트를 하려는 경우가 있다”면서 “실제로 얼마 전 한 교사도 스카우트되는 과정에서 억대 연봉과 개인 차량, 아파트를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최근 대학입시의 양상이 변하면서 우수교사를 데려오기 위한 고교 간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하다. 서울대가 2013학년도에 신입생의 80%를 수시전형으로 선발하는 등 대입의 무게중심이 정시에서 수시로 넘어오면서 실력 있는 교사 한 명이 대입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전면 시행된 교사초빙제는 이런 스카우트 전쟁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이미 교사 초빙이 자유로운 자율형사립고 외에도 자율형공립고는 교사 정원의 100%, 서울형 혁신학교 등 자율학교는 50%, 일반계 고교는 20%까지를 초빙할 수 있게 된 것.

특히 고3 담임교사를 오래 맡아 진학지도 경험이 풍부한 까닭에 수시의 중요 평가요소인 교사추천서 작성이나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작성 지도를 잘하는 교사는 주요 스카우트 대상으로 꼽힌다.

서울의 한 고교 대외협력부장 B 교사는 “최근 진학지도 실력이 뛰어난 교사 중 적잖은 수가 수업시수를 절반 가까이 줄이고 학교 내 별도의 연구공간을 제공받는 등의 혜택을 받으며 자율형사립고에 스카우트됐다”면서 “교육방송(EBS) 강사 출신 교사와 논술지도를 잘하는 교사도 섭외대상 일순위”라고 귀띔했다.

○ 우수교사에 수차례 ‘러브콜’…억대 연봉 제안받기도

고교들은 우수교사를 데려오기 위해 몇 번이고 직접 찾아가는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는다. 각 시도교육청이 지정한 교사 초빙기간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면 교원명부를 참고해 학교를 옮길 시기가 된 교사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주위 교사들에게 추천을 받고 해당 교사의 평판을 알아보는 등의 작업을 거쳐 ‘스카우트 리스트’를 만든 뒤 교사 초빙에 돌입한다.

스카우트 대상으로 지목되는 실력 있는 교사들이 대부분 중복되다 보니, 한 교사가 여러 학교의 ‘러브콜’을 받는 일도 벌어진다. 최근 부산의 한 고교에서 영어교과를 담당하는 C 교사는 교사 초빙기간을 앞두고 3개 고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교사를 초빙하기 위한 노력만큼 학교를 떠나려는 우수교사를 붙잡기 위한 학교의 노력도 뜨겁다. 서울의 한 자율형공립고 D 교사는 교사 초빙기간을 앞두고 교장실에서 면담을 해야 했다. 교장과 교감으로부터 열 번이 넘게 “학교에 남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 D 교사는 지역교육청의 심화과정 수업 강의를 맡을 정도로 수업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진학지도를 맡았을 때는 유례없이 서울대 진학 학생만 4명이 나올 만큼 뛰어난 성과를 낸 인물.

이 고교 E 교감은 “이 선생님이 맡은 반의 입시 실적이 뛰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학부모들이 ‘선생님을 잡아 달라’고 학교에 요청해올 정도였다”면서 “학교 발전을 위해 조금만 더 힘써 달라며 인정에 호소한 끝에 1년 더 학교에 남게 됐다”고 말했다.

○ ‘인센티브’ 제안 못하는 학교들, “인정에 호소할 수밖에…”

하지만 모든 고교가 우수교사를 데려오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율형공립고와 일반공립고는 자율형사립고에 비해 한계가 많다. 우수교사를 데려와 학교를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시작한 교사초빙제지만, 이들 학교는 초빙대상 교사에게 승진 가산점을 주거나 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인센티브를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교사 12명을 초빙해야 했던 부산의 한 자율형공립고는 단 2명을 데려오는 데 그쳤다. 이 학교 F 교감은 “지역교육청에 ‘학교가 교통이 불편한 외곽지역에 있어 교사들이 전입 오기를 꺼리는 상황임을 감안해 승진 점수에서 지역가산점을 조금 더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자율형공립고는 일반 고교에 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많아 업무량이 많다. 교사의 열정에만 호소하며 학교에 와달라고 요청하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지역 자율형공립고와 내년에 10개고로 확대되는 ‘서울형 혁신학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의 한 자율형공립고는 올해의 경우 지난해보다 빨리 교사 초빙을 위한 홍보에 나섰다. 지난해 교사 16명을 초빙하기 위해 70명 남짓한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지만, 충원 인원은 정작 4명에 불과해 학교 운영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 학교 G 교감은 “많은 교사가 서울 강남과 목동 등 교육특구의 고교나 집과 가까운 학교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특별한 유인책 없이 교사의 교육적 책임감을 내세우며 인정에만 호소할 수밖에 없어 올해 교사 초빙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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