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극한 대치중인 여야… 뒤에선 선심성 예산 ‘합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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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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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안보다 8조6500억 증액… 2013년 균형재정 무산 위기

정부는 9월 국회에 2012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신규 도로건설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도로에 신규 사업이 전혀 없다는 것은 내년 예산이 정치일정(총선 및 대선)과 연관이 없다는 증거”라고 자랑했다. 도로 대신 철도에, 사회간접자본(SOC) 대신 꼭 필요한 복지에 돈을 쓰겠다는 것이 정부 예산 원칙이었다.

하지만 예산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거치면서 정부의 이런 원칙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국토해양위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20개 신규 도로 사업에 932억5000만 원을 배정했다. 당초 정부안에는 ‘0원’이었던 사업이다. 수도권(제2경부고속도로), 영남(대구외곽순환도로), 호남(무주∼설천 국도), 강원(도계∼횡성 국도), 충청(보령∼청양 국도) 등 지역마다 사이좋게 가져갔다. 복지 분야에서도 기초노령연금 등이 크게 증액되면서 표를 노린 예산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13년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국회의 ‘예산 포퓰리즘’에 멍들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 간의 날선 공방이 격화되고 있지만, 내년 총선을 위한 ‘예산 증액 후 나눠 먹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20일 국회 15개 상임위별 예비심사보고서에 따르면 각 상임위는 정부 제출안(326조1000억 원)보다 2.7%(8조6499억 원) 증액한 334조7499억 원의 예비심사안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겼다. SOC 사업이 몰려 있는 국토위 예산이 3조5321억 원 증액됐고, 보건복지위 예산은 1조385억 원 늘어났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도 7150억 원을 늘렸다.

문제는 늘어난 예산 중 상당액이 내년 선거를 위한 치적 쌓기용으로 부풀려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도로망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신규 예산 배정을 중단했지만 국회에서 이 원칙은 통하지 않았다. 지난해 8개, 올해는 20개의 신규 도로사업이 국회에서 추가됐다. 예컨대 화도∼양평 고속도로(20억 원), 금강하굿둑∼국립생태원(100억 원), 흥해우회도로(50억 원) 등이다. 정부가 편성하지 않았던 대구·부산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비용(205억 원)도 포함됐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노령연금 5875억-도로신설 932억↑▼

김상규 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은 “전국에 도로사업만 400여 개가 진행되고 있고 이것을 마치는 데만 7, 8년이 소요된다”며 “도로는 일단 공사를 시작하면 해가 지날수록 예산을 많이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하던 공사를 이어가는 것보다는 새로 공사를 시작하는 게 치적 알리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신규도로 사업에 목을 맨다”며 “내년 총선으로 예결위에서의 조정도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복지 예산도 여야 경쟁으로 한껏 불어났다. 기초노령연금은 정부가 2조9665억 원을 책정했지만 국회에서 연금액 기준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5%에서 6%로 1%포인트 늘려 잡으면서 5875억 원 증액됐다. 노인일자리 운영사업 예산도 월 20만 원의 수당을 30만 원으로 늘리면서 663억 원 증가했다. 또 △전국 경로당 난방비·쌀값 보조(72억→850억 원) △경로당 지원센터 운영(30억 원) 등 노인 표를 얻기 위한 갖가지 예산이 대거 포함됐다. 문화 분야에선 수도·수녀원 스테이 예산이 국회에서 3000만 원→10억 원으로 33배 늘었다. 부산(국립극장 건립 30억 원), 대구(공연문화도시 조성 30억 원), 광주(복합문화체험 사업 10억 원), 제주(서귀포 종합문화예술회관 20억 원), 강원(정선 아트밸리 38억 원) 등에 배정된 돈은 애초 정부 예산안에 없던 것들이다.

나랏돈 씀씀이가 이처럼 커지면서 정부가 공언했던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이 힘들어지게 됐다. 정부는 9월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매년 4%대 중반 성장을 달성하고 △세수가 연평균 8.7%씩 늘어나고 △재정지출이 매년 4.8%씩 증가할 때 2013년 관리대상수지가 흑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경제예측 기관들이 당장 내년 성장률 전망을 3%대로 낮추는 비관적인 상황에서 포퓰리즘적 지출을 늘리면 재정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5년까지 성장률이 연평균 3.8%에 그쳐 2015년 관리대상수지가 6조7000억 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한다면 지금 같은 국회의 예산심의는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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