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은 보험도 들 수 없나요?”

동아일보 입력 2011-11-16 03:00수정 2011-11-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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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종신보험 가입 거절
“차별금지법 위반” 소송냈지만… 법원 “청약 인정 안돼” 패소
2급 지적장애인 허모 씨(36). 그는 지적장애 외에는 질환이 없다. 먹고 있는 약도 없다. 의사소통에도 지장이 없다. 허 씨는 지난해 4월 종신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 동양생명 등 보험회사 4곳에 전화를 걸었다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허 씨는 지난해 부당한 차별을 금지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소송 어느 과정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은 단 한 차례조차 법원 판단 기준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 월 12만 원대 종신보험 가입도 어려워


허 씨는 국내 대형 보험회사 4곳에 전화를 걸어 일반인 종신보험에 가입하려고 문의했다. 일부 보험회사에 장애인 전용 보험이 마련돼 있지만 혜택이나 보호범위가 좁아 사실상 잘 활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 허 씨는 통상 비장애인들이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보험회사 홈페이지에서 신상 정보를 입력한 뒤 보험 상품을 선택하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허 씨가 설계한 상품은 월 납입 보험액으로 12만 원대 일반인 종신보험이었다. 허 씨와 통화를 하던 전화상담원들은 처음에는 ‘계약 체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으나 이후 모두 보험 가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에서는 건강진단까지 받아 일상생활이나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직원으로부터 “정신지체 장애 2급이고, 단순노무에 종사하는 직업을 가진 점으로 보아 보험가입 기준상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어렵다”며 “장애인용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허 씨가 가입하려던 상품 약관에는 장애인의 가입을 제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결국 허 씨 등 2명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로 헌법에 위반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위반된다. 보험가입 청약에 대해 승낙하라”며 지난해 이 4개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 법원, 보험사 손 들어줘

이 사건에서 최근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문용선)는 “허 씨가 종신보험을 가입하려는 계약에 대한 ‘청약’단계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허 씨 주장을 기각한다”며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1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김정원)와 같은 결론이다. 재판부는 계약 체결 단계에서는 ‘청약’과 ‘승낙’이 필요한데 이 사건에서 계약 조건 등이 명시된 적법한 청약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보험회사가 계약에 승낙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 결과를 두고 ‘청약’의 존재 여부에 관한 형식적 판단에 그칠 빌미를 준 원고와 ‘지적 장애인 사건에서 적극적 판단에 나서지 않는’ 법원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고는 끝까지 청약서를 완성한 뒤 소송을 내는 것이 옳았고, 법원은 전화 상담 단계에서 가입을 사실상 거절당하게 되면 후속 절차를 진행하기 힘든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애써 눈 감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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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보험 가입 거절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에 들어갔더라도 장애인 권익을 향상시키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게 일선 판사들의 견해다. 먼저 재판부가 ‘가입절차를 충실히 이행하라’는 판결을 내렸을 경우. 법조계 관계자는 “이 경우 보험회사는 지적 장애인의 전화를 끝까지 받으며 청약을 받은 뒤, 보험 가입을 거절해도 위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법원이 한발 나아가 ‘보험회사는 지적 장애인의 보험 청약에 승낙하라’고 판결하는 것은 법 조항의 한계 안에서 판결해야 하는 법원에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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