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데를 찾아간 ‘가톨릭학원’… 75년간 150만명 무료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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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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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이 전한 사랑의 仁術… 왼손도 모르게

가톨릭학원이 1965년 여름 서울에 차린 무료진료소. 성모병원 등 학원 산하 의료기관은 청량리 등 서울 전역에 출장진료소를 차려 저소득층 환자를 돌봤다. 가톨릭학원 제공
가톨릭학원이 1965년 여름 서울에 차린 무료진료소. 성모병원 등 학원 산하 의료기관은 청량리 등 서울 전역에 출장진료소를 차려 저소득층 환자를 돌봤다. 가톨릭학원 제공
“교수님, 오랜만이시네요. 저 이렇게 건강해져서 왔습니다.”

이달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은 박정열 씨(57)를 이선희 가톨릭대의대 교수가 반갑게 맞았다. 2008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박 씨의 가슴 한가운데에는 주먹크기만 한 구멍이 있었다. 27년 전 받은 늑막염 수술 이후 합병증으로 생긴 상처였다. 지름 5cm, 깊이 10cm의 구멍은 매일 소독해도 고름이 나왔고 거즈로 가려도 퀴퀴한 냄새가 났다. 부인과 딸마저 차례로 떠났고 박 씨는 200만 원짜리 컨테이너 박스에서 홀로 항생제로 버텼다.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았다”는 박 씨가 다시 삶을 꿈꾸게 된 것은 3년 전 가톨릭학원의 도움을 받은 뒤부터. 3년에 걸쳐 무료로 가슴 흉터 치료와 구순열(입술갈림증) 수술을 받았다.

이날 이 교수의 손을 맞잡은 박 씨는 “25년 만에 공중목욕탕도 갔다”며 “건물 청소일을 시작해 한 달에 80만 원씩 벌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교수는 “건강해진 모습도 좋지만 활짝 웃는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고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남을 도울 때는 은밀하게 하라는 의미다. 75년째 남몰래 의료봉사를 해 온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사장 정진석 추기경)이 철칙처럼 지켜온 말이기도 하다.

가톨릭학원은 지난 1년간 산하기관의 의료봉사 및 자선진료를 통해 75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학교법인 기관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연간 1600명의 의료진이 참여하는 의료봉사 덕에 매년 3만6500명의 환자가 무료진료를 받고 있다.

무료진료의 역사는 1936년 서울 중구 저동에 성모병원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는 진료비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36년 첫 해에만 8496명이 찾아왔고 1937년에는 두 배가 넘는 2만2194명이 도움을 받았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11일에는 수녀와 간호사로 구성된 ‘가톨릭 의료봉사단’이 출범했고 이들은 포탄이 오가는 전쟁터를 다니며 다친 군인과 민간인을 보살폈다.

가톨릭학원은 그동안 무료봉사 실적이나 내용을 한 번도 외부에 알린 적이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무료진료 횟수나 환자 기록도 없다. 가톨릭학원은 최근까지 75년간 무료진료를 받은 환자가 150만 명 선을 막 넘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톨릭학원 산하 의료기관의 의사라면 누구나 의료봉사를 당연한 업무로 여긴다. 이 교수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누가 유료 환자고 누가 무료 환자인지 모를 때가 많다”며 “치료가 충분히 가능한데도 돈이 없어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되살려놨을 때 가장 보람이 크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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