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원정대 실종 11일째… “또 하루가…” 山 아래 가족들도 악전고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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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석 원정대 실종 11일째… 네팔서 절망과 싸우는 가족들

네팔은 요즘 명절 기간이다. 떨어져 살던 가족도 한곳에 모이는 때이지만 박영석 원정 대 가족들은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애타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
민, 강기석 대원, 박영석 대장. 동아일보DB
네팔은 요즘 명절 기간이다. 떨어져 살던 가족도 한곳에 모이는 때이지만 박영석 원정 대 가족들은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애타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 민, 강기석 대원, 박영석 대장. 동아일보DB
축제의 그늘 속에서 가족들은 떠돌고 있었다. 28일 네팔 카트만두. ‘개의 날’ ‘소의 날’에 이어 이날은 ‘오누이의 날’이다. 1년 중 두 번째로 큰 명절이라는 티하르 축제의 마지막 날이다. 힌두교 축제인 티하르는 까마귀와 개, 소, 오누이를 기념하는 축제다. 오누이의 날은 가족들이 재회하는 날이다. 시집간 여동생과 누이가 모처럼 친정으로 돌아와 오빠와 가족들에게 꽃을 걸어주며 행운을 빈다. 나흘간 계속되는 축제 기간에 관공서와 식당은 문을 닫았다. 사람에게 봉사하느라 고생한 개와, 논을 갈고 노동력을 제공한 소를 기념하는 등의 행사다. 10월 초에 염소를 잡아 신에게 올리는 다사인 축제 다음가는 명절이다.

축제 기간 동안 거리엔 음악이 넘친다. 골목골목엔 행운을 빌어주는 소년들이 작은 북을 들고 집집마다 방문한다. 그러나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된 지 11일째인 박영석 대장(48) 신동민(37) 강기석 대원(33)의 가족들은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질문과 대답은 좀처럼 오가지 않았다. 한국 구조대는 이날도 총력을 기울여 수색에 나섰지만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했다. 북을 들고 왔던 소년들은 경비원의 제지로 입구에서 되돌아갔다. 이국의 거리는 가족들의 재회로 들떠 있지만 한국 대원들의 가족들은 그러지 못했다.

카트만두까지 날아온 가족들은 숙소를 자주 옮겨야 할 처지다. 10월 말부터 네팔 관광의 성수기가 시작돼 거리엔 외국인 천지다. 모든 숙소가 가득 찼다. 이들은 급히 오느라 장기 예약을 할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숙소를 옮겨야 한다. 현재 묵고 있는 호텔 예약은 29일까지다. 다른 호텔을 알아보고 있다.

가족들은 아직 구조 현장에 가보지 못했다. 카트만두에서 구조 현장까지는 헬리콥터로 서너 시간이 걸린다. 시간당 2000달러(약 220만 원)에 육박하는 헬리콥터 비용도 비용이지만 예약이 동났다. 에베레스트와 히말라야 곳곳에서 조난사고가 잇따라 동시 다발적으로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원들의 실종사건 외에도 고산증 및 조난 사고가 여러 군데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카트만두는 축제와 고통이 뒤섞여 있다.

한국 구조대는 그동안 10차례 가까이 헬리콥터를 띄웠다. 구조대가 현지 회사에 다급한 사정을 알리며 총력을 기울여 가까스로 헬리콥터를 임차했다. 그동안 헬리콥터 임차 비용만 6만 달러(약 72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그보다 더 다급한 건 시간이다.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는 사고대책반의 정상욱 골드윈코리아 상무이사는 “27일 오후에만 베이스캠프에 80차례 위성전화를 걸었다. 그중 성공한 것은 두 차례뿐이었다”고 했다. 날씨와 험난한 지형 못지않게 소통의 답답함이 초조함을 더한다. 가족들은 기다림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희망이 그들을 지켜 주고 있다.

가족들은 음식도 제 맛을 느낄 리 없다. 산에서 내려온 구조대원이 실종대원의 가족 앞에서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박 대장의 부인은 쓰러져 링거 주사를 맞고 있다.

박 대장이 올랐던 절벽 따라 수색 박영석 원정대가 실종된 지 벌써 11일째. 실낱같은 생존 가능성을 믿고 대대적으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수색대가 박 대장 일행이 올랐던 절벽을 훑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제공
박 대장이 올랐던 절벽 따라 수색 박영석 원정대가 실종된 지 벌써 11일째. 실낱같은 생존 가능성을 믿고 대대적으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수색대가 박 대장 일행이 올랐던 절벽을 훑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제공
박 대장의 아들 성우 씨는 아버지와 함께 네팔에 몇 년간 머문 적이 있다. 네팔에서 30년간 지낸 삼부토건 이경섭 법인장은 “아버지가 산에 올라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자신도 꼭 커서 아버지처럼 되겠다고 했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 아들은 카트만두에서 국제전화로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해외 원정은 산악인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기도 한다. 해외 원정비용은 한 번에 3억∼5억 원이 든다. 부족한 자금은 등반대장들이 집을 팔아 마련하기도 한다. 해외 원정을 떠나는 산악인의 가족은 울면서 만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어이 산으로 떠난다. 남은 가족들은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새벽기도를 하기도 하고 애를 태운다. 그러면서도 매번 보낸다.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 산으로 가느냐는 질문에 20년 전 안나푸르나에서 사촌형을 잃고 시신을 수습했던 변월주 씨는 “산에 안 가보셨지요”라는 한마디로 답을 대신했다. 산은 속세의 논리로 따질 수 없는 영혼을 울리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대자연의 힘이다. 마약과도 같다고 했다.

몸은 속세에 있지만 마음은 산으로 향하는 산악인들. 가족들은 현실의 논리와 산의 논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편과 사랑하는 이들을 산으로 보냈다. 산이 전해주는 깊은 메시지에 그들이 호응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안타까우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산으로 보냈다.

카트만두=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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