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역행인가 철강업체의 관행인가… 포스코, 일부 외주협력사에 인사권 행사 논란

  • Array
  • 입력 2011년 9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올 4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 본사에서 열린 ‘포스코 패밀리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식’. 이날 행사에는 포스코의 1∼4차 협력업체 953곳이 참석했다. 포스코는 그동안 국내 산업계의 동반성장 모범기업으로 평가돼 왔지만 협력업체 대표 인사에 관여하고 자사 퇴직자들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올 4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 본사에서 열린 ‘포스코 패밀리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식’. 이날 행사에는 포스코의 1∼4차 협력업체 953곳이 참석했다. 포스코는 그동안 국내 산업계의 동반성장 모범기업으로 평가돼 왔지만 협력업체 대표 인사에 관여하고 자사 퇴직자들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포스코가 일부 외주 협력사의 대표를 결정하는 등 인사권을 행사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회사 지분을 소유한 투자자가 아닌 대기업이 협력사 인사를 행사했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국가 업무를 대행해 제철 생산용 가스의 안전성을 검사해온 기관의 대표에 대해서도 피검사기관인 포스코가 물러나도록 요구한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검사를 받는 회사가 검사 기관의 인사를 좌지우지한 것이다.

8일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실은 “포스코 포항·광양 공장의 제조 관련 외주 협력사 95곳 중 44곳에서 포스코 퇴직자들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포스코는 이들 기업의 대표를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외주 협력사 8곳은 포항·광양 지역의 상공회의소가 포스코에 대표이사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포스코가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덧붙였다.

포스코가 외주 협력사의 인사권에 관여한 것은 포스코 출신의 퇴직자에게 일정 기간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데다 비용절감 측면에서도 유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협력사로서는 포스코가 거래를 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인사권 행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철강산업의 특성상 포스코 출신 전문가들이 협력업체 대표로 일을 해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며 “포스코 출신의 대표가 주기적으로 교체된 것은 개인적인 건강 등의 문제로 자발적으로 사퇴한 뒤 포스코에 후임 대표를 추천해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주장했다.

○ 피검사기관, 검사기관 대표 교체 요구

동아일보 취재 결과 포스코 공장의 고압가스 안전성을 검사하는 ‘지스텍’의 윤모 대표는 최근 다른 협력사인 수처리설비업체 ‘포엘’의 대표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포스코 측으로부터 받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윤 대표는 포엘로 이동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포스코의 지시로 포엘의 업무를 시작했고, 지스텍의 주식도 처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상의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포스코 외주협력사 3곳의 대표와 1곳의 부사장을 포스코에 추천했다. 포항상의 관계자는 “2006년에는 포항상의가 2명을 추천해 1명을 포스코가 선택했고, 이후에는 상의 추천을 받아들여 외부 협력사의 대표와 임원을 포스코가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청소나 녹화조림 등의 사업을 하는 업체의 대표가 포스코에 후임자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상의를 통해 연결시켜준 것뿐”이라고 말했다.

○ 포스코, “철강업계의 관행”

포스코가 외주 협력사의 대표까지 결정하는 관행은 포스코에 매출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협력사의 사업구조에서 비롯됐다. 포스코가 협력업체에 대표직을 사퇴할 것을 요구하면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일정 금액에 주식을 넘기고 기업을 떠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지스텍 역시 2007년 설립 이후 최근까지 92건의 검사 실적 중 2008년의 3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포스코의 가스시설만을 검사했다.

포스코 측은 “철강산업의 특성상 오랫동안 함께 일한 퇴직자들이 외부 협력업체의 경영을 맡으면 그만큼 효율성이 높아진다”며 “이런 방식은 포스코뿐 아니라 신일본제철 등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외부 협력사 관계자는 “외부 협력체 대표로 포스코 출신들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포스코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협력업체 대표가 주식을 처분하고 나가도록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라고 반박했다. 협력사 관계자는 또 “포스코는 자신들 외에 다른 회사와 일하는 것을 통제하기도 했다”며 “대표가 몇 년 뒤면 타의에 의해 회사를 떠나야 하는 만큼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도 가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들은 대기업이 거래상의 관계를 이용해 외부 협력사의 인사를 좌지우지하거나 다른 업체에 납품하는 것을 사실상 방해한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경 의원은 “포스코가 사실상 외주 협력사들의 인사에 개입한 것은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기업들은 협력업체와 정상적인 관계를 통해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스코는 철강업계 관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특정 업체에 물량을 몰아주는 것은 다른 업체의 시장진입을 봉쇄해 중소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간사인 김 의원은 19일 지경위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할 예정이다. 포스코 측은 10월 6일 국회에 출석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