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의 재앙?… 지난달 포천서 펜션 덮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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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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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무분별 인공조림… “뿌리 얕아 산사태에 취약”


지난달 27일 경기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펜션에 있던 70대 부부 등 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수십 그루의 잣나무였다. 산사태로 흙모래와 뒤섞여 내려오던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펜션을 덮쳐 안에 있던 투숙객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숨진 것이다.

사고를 목격한 금동리 이장 김모 씨(61)는 “거대한 잣나무 수십 그루가 펜션을 덮치자마자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펜션 뒤편의 남청산 자락은 1970년대 녹화사업 때 심은 잣나무가 전체 나무의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사태로 16명이 희생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지역에도 잣나무 숲이 있다. 전원주택 8채가 매몰되고 2명이 숨진 방배동 임광아파트 건너편 산사태 현장에는 잣나무가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 다른 나무에 비해 뿌리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다. 이 때문에 산사태에 취약한 잣나무가 많아 피해가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도 2일 국무회의에서 잣나무가 산사태의 원인 중 하나라는 보고를 받은 뒤 “산림을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로 뿌리가 깊은 심근성(深根性) 수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소나무와 비교했을 때 집중호우에 버티는 힘이 크게 떨어진다. 소나무는 상체에 군살이 적고 하체가 튼튼한 반면에 잣나무는 튼실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부실한 편이다.

땅 위에 있는 나무 몸통(Top)의 무게를 뿌리(Root) 부분의 무게로 나눈 값인 TR비율은 잣나무가 소나무보다 30∼50% 높다. 즉, 전체 나무에서 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소나무가 잣나무보다 1.3배에서 1.5배 크다는 것. 잣나무는 줄기를 지탱하는 뿌리의 힘이 소나무에 비해 약하다.

순천대 산림자원학과 박인협 교수는 “비옥한 곳에서 자라는 잣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는데 땅이 척박할수록 양분을 얻기 위해 뿌리를 더 깊숙이 뻗고 잔가지도 많아진다”며 “토양을 얽매는 힘에 있어서 통상 소나무가 잣나무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도 잣나무 숲길 ▼

잣나무만 쓰러져… 잣나무가 산사태의 원인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서 잣나무가 쓰러져 있다. 다른 나무들이 서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잣나무만 쓰러져… 잣나무가 산사태의 원인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서 잣나무가 쓰러져 있다. 다른 나무들이 서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또 소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관목과 잡풀이 많이 자라지만 잣나무는 이파리가 햇빛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 나무 밑에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국립산림과학원 박병배 연구원은 “비가 오면 나무 밑에 있는 잡목이 빗물의 속도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잣나무는 밑에 잡목이 적어 물에 쉽게 휩쓸린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산림공학과 윤여창 교수는 “잣나무는 열매가 열려 상업적 이득이 있고 한번 심으면 비교적 잘 자라 목재를 얻기도 쉬워 녹화사업 때 전국적으로 많이 심었다”며 “인공조림이 많아지면 산사태 등 자연재해에는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림 전문가들은 산사태의 탓을 전적으로 잣나무에 돌리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뿌리가 깊이 내려가는 소나무나 참나무만 심는다고 반드시 산사태 예방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잣나무 등 심근성 수종은 뿌리를 깊게 박는 일명 ‘말뚝 효과’가 있는 반면 뿌리가 얕은 천근성(淺根性) 나무의 경우 뿌리는 얕아도 사방으로 넓게 퍼지는 ‘그물망 효과’가 있다. 여러 종의 나무를 적절히 섞어 심어야 토양을 밑에서 붙잡고 옆에서 지탱해주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구교상 박사는 “잣나무를 심은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수종 간의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나무만 집중적으로 심는 게 문제”라며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뿌리는 깊어도 송진처럼 불씨를 키우는 물질이 있어 산불에는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산의 토질 특성상 어떤 나무를 심어도 산사태 예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는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흙의 점성이 약하고 흙에 자갈과 바위가 많이 섞여 있어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산사태는 수종뿐 아니라 강수량 경사도 토질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일 국무회의에서 추가적인 산사태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해진 특임 차관은 펜션 붕괴로 3명이 사망한 포천시 산사태 사고를 거론하며 “산사태 발생지역을 직접 둘러보니 잣나무가 많아 앞으로도 산사태가 우려된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녹화사업을 하면서 유실수를 심자고 해서 잣나무를 심었는데 요즘은 잣을 따는 사람도 많지 않아 쓸모없는 나무가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는 산림녹화를 위해 나무를 심기만 했는데 이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수종관리가 필요하다”며 “강원도에 특히 잣나무가 많은데 이제는 외국처럼 간벌(나무의 밀도나 구성을 조절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와 산림청이 과학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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