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도 100% 가능”… ‘카드 대리발급’ 검은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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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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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변북로에 언제부터인가 정체불명의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 ‘카드발급 대행. 신용불량자도 100% 가능. 한도 500만 원까지.’ 강변북로만이 아니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한적한 주택가에도, 대학가 곳곳에도 유사한 포스터들이 등장했다. 번호는 약간씩 달랐지만 이들이 내건 홍보문구는 같았다. 등급에 상관없이 카드 발급을 보장한다는 것.

기자가 카드 발급을 보장한다는 한 카드발급 대행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봤다. 6차례 시도 끝에 연결된 여성 상담원은 “신용등급 수준이나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사용신용’을 바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용신용’이란 낯선 단어에 머뭇거렸더니 “일반인들에게는 휴대전화 사용신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지금 전화를 건 번호로 조회해 보니 신한, 현대, KB카드 중에서 원하는 카드 발급이 즉시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어 상담원은 “우리는 합법적인 업체이기 때문에 대리발급 대가로 별도 수수료를 받지 않지만 29만6000원의 선납금이 필요하다”며 “이는 향후 휴대전화 사용요금으로 되돌려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만 가져오면 일주일 내 카드를 발급해줄 수 있다며 연락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1통. 일주일 내 가능. 상담원 ○○.’

신용카드사들의 회원 유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들에게도 카드를 발급해준다며 금융채무 불이행자들을 유혹하는 길거리 광고물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신용카드 대리발급업체들은 상담원과 사무실을 갖춰놓고 ‘100% 카드 발급’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길거리, 지하철역 같은 곳에 붙여놓고 기업형으로 영업하고 있다.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카드 대리발급 업체들의 불법적인 영업이 기승을 부리는 배경에는 카드사들의 공격적인 카드론 광고영업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지난해 7∼10등급에 대한 카드 발급 건수는 193만6000건으로 2009년(177만5000건)보다 16만 건가량 늘었다. 이 등급 해당자들의 카드 이용액은 2008년 46조9000억 원, 2009년 51조 원에서 지난해 66조5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카드 대리발급 업체들은 카드사들이 부추긴 저신용자들의 ‘카드사용 열기’를 이용해 이들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저신용자들에게는 카드론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발급이 달콤한 미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카드사들은 “신용카드는 반드시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며 “휴대전화 신용을 바탕으로 한 카드발급 방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카드 대리발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카드업계 관계자는 “본인의 신청에 의해, 신용등급을 심사한 뒤 발급하는 것이 신용카드”라며 “휴대전화 사용신용이란 단어도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대리발급 업체들이 대체로 체크카드를 발급한 뒤 자신들의 자금을 통장에 넣어 신용카드처럼 사용하게 해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높은 이자를 떼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분증, 주민등록등본으로 개인 신용정보를 빼돌릴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카드 대리발급과 관련한 민원이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대부업체로 등록해 법망을 피해가는 등 영업행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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