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학군단의 캠퍼스 24시

  • Array
  • 입력 2011년 5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소프라노 음색이지만 우렁찬 군가… 전투복-단복만으로도 아름다운 충~성!난 여성 ROTC 1기다”

《 지난해 말 선발된 제1기 여성 학군단(ROTC) 후보생 29명이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3월 대학 캠퍼스로 돌아왔다. 파란 단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모습은 대학가의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여자대학으로서는 유일하게 ROTC를 선발하는 숙명여대에서는 개교 100년 이래 처음으로 ROTC가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 많은 화제를 모았다. 두 달 반이 돼 가는 이들의 캠퍼스 생활은 어떤지 찾아가 봤다. 》
숙명여대 여성 학군단(ROTC) 후보생들이 친구들과 교정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파란 제복과 베레모 차림의 여학생들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모습은 이제 대학 캠퍼스의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숙명여대 여성 학군단(ROTC) 후보생들이 친구들과 교정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파란 제복과 베레모 차림의 여학생들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모습은 이제 대학 캠퍼스의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뜨거운 전우애로 뭉쳐진 우리들, 하늘 땅 바다에 널리 깔려서∼.”

오전 7시, 서울 효창운동장에는 군가 ‘팔도 사나이’(2절)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익숙한 가사임에도 소프라노의 음색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소리만큼은 우렁찼다. 400m 운동장 5바퀴 뛰기를 마치자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가 이어졌다.

효창운동장에서 오전 체력단련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많은 주목을 받았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조기축구를 하고 있던 일행은 경기가 잠시 끊길 때마다 이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거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등 뒤에 큼직하게 ‘ROTC’가 새겨진 녹색 운동복에 운동모를 쓰고 2열 종대로 효창운동장에서 숙명여대로 이어지는 백범로를 걷는 동안 출근길 운전자들과 등굣길 중고교생들의 눈길이 이어졌다.

오전 8시, 이들은 체력단련을 마치고 기숙사인 구국관으로 돌아와 ‘개구리복’이라 불리는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오전 9시에 시작되는 ‘군사학’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이날 수업은 당직사관이 중대장에게 보고하는 요령에 대한 것이었다.

“충성 1중대 1소대장 소위 김예솔입니다. 부대인원 확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기상은 맑음이며 기온은 15도이고 풍향은 북동풍, 풍속은 초속 5m입니다.” 지휘봉을 들고 표를 가리키는 모습과 “∼니다”로 끝나는 말투는 영락없는 군 장교였다. 하지만 동료가 실수할 때마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은 영락없는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오전 10시 반∼11시는 가장 바쁜 시간이다. 11시에 시작되는 전공 및 교양수업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강의실 옆방에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후보생들은 백주년기념관 4층에서 1층까지 나는 듯이 뛰어 내려갔다. 그러나 1층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절도 있게 걷기’ 모드로 바뀌었다. 슬랩스틱 코미디 같았다. ‘왜 뛰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후보생은 “아무리 급해도 단복을 입고 뛸 수 없다. 수업에 늦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오전 10시 55분, 이미소 김예선 후보생(영문과 3학년)은 ‘미국 소수자 문학’ 수업이 있는 강의실에 도착했다. 강의실은 200석이 넘는 대형 강의실. 이들은 망설이지 않고 앞줄 세 번째 줄에 나란히 앉았다. 이 후보생은 “학기 전 생도들이 모범을 보이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앞에서 세 번째 줄을 넘어서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강의를 맡은 영문과 강미영 교수는 “제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학생들이 씩씩하게 질문도 하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숙대생들이 정적이고 내성적인 면이 있었는데, ROTC 학생들이 귀감이 되고 자극도 주고 있어 수업 분위기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들의 오후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다. 태권도와 영어수업이 있는 요일을 제외하곤 점호시간(오후 10시 반)까지 기숙사로 돌아오면 된다. 주말에는 집으로 가는 학생이 많다.

몇몇 후보생에게 ROTC 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이들은 ROTC 선발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에 대해 ‘주위의 시선’이라고 답했다. 정희경 후보생(체육교육학과 3학년)은 “예전 같았으면 수업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을 밀치고라도 뛰었겠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그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양지민 후보생(법학과 3학년)도 “수업시간에 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예전에는 수업시간에 커피와 빵을 들고 가곤 했지만 이제는 길을 걸을 때도 커피를 들고 있지 못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연애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까. 훈육관인 김나미 대위는 “처음에는 금지하려 했지만 연애까지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어 허용했다”고 답했다. 두 후보생은 “캠퍼스에서 너무 드러내는 행동을 하면 안 되지만 같이 다니는 것 정도는 허용된다”며 “아직까지 남자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할 수 있다.”(정 후보생) “우리나라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양 후보생)

한편 숙명여대와 함께 제1기 여성 ROTC를 선발한 고려대(서울) 명지대(경기) 충남대(충청) 전남대(호남) 영남대(영남) 강원대(강원) 등 6개 대학에서는 각 5명의 여자 후보생이 남자 후보생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있다. 학생중앙군사학교의 정남채 정훈공보실장은 “여성 후보생들이 남성 후보생을 따라잡느라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 명의 포기자도 나오지 않았고 훈련 성과도 점차 남자들과 대등해지고 있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