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내 아이 행복할까?]똑똑한 만큼 민감… 감정 대안 찾아 스트레스 풀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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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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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을 위한 학부모 감정코칭법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서울의 한 고교 2학년 남모 군(17)은 지난해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온 몸이 부서지듯 아팠다. 겨우겨우 학교까지 갔지만 시험 도중에 눈앞이 흐려져 글씨가 안 보였다.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이었다. 그는 “성적이 떨어진다고 상상하니겁이 났다”면서 “한 문제라도 틀려 성적이 떨어지는 걸 걱정하다가 그날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고 말했다.》적잖은 중고교생이 ‘전교 1등’을 꿈꾼다. 1등이 되면 성적에 대한 걱정도 없고 학교생활이 힘들지 않을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전교 1등이 받는 스트레스는 만만찮다.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극도의 긴장과 부담감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서울서부교육청 Wee센터 박미라 센터장은 “시험 스트레스나 우울함을 호소하며 상담센터를 찾는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전체 상담학생의 20%에 이른다”면서 “상위권 학생일수록 정서적으로 민감해 사소한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에 휩싸인 전교 1등. 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상위권 학생이 받는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지도법을 살펴보자.

○ 한 문제도 틀리면 안돼!… ‘완벽주의’형

최상위권 성적을 지닌 서울의 중3 A 양(15)은 지난해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을 보는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답지를 맞춰보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도 없었다. 다음 시간에 볼 시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학교에서 채점을 했다. 한 문제가 틀리면 곧장 울상을 지었다. ‘아쉽게 문제를 틀렸다’고 생각될 땐 교실 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단 한 문제에 집착하는 자녀는 완벽주의 성향이다. 이런 아이들은 모든 일에 성공하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는 어떻게든 이뤄내고 싶어 한다.

자녀가 한두 문제를 틀려서 우울해하고 있다면? 먼저 아이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주고 속상한 마음을 이해해줘야 한다. “네가 실수한 거다” “한 문제 정도는 틀릴 수 있다”는 훈계조 말은 지양한다. “다 맞을 수 있었는데 (한 문제를) 틀렸으니 정말 속상하겠구나”라며 아이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줘야 한다.

자녀의 감정이 잦아든 뒤에는 자녀가 마음속으로 ‘감정적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 “다음번에 시험 잘 보면 된다”는 말은 금물이다. 학부모가 단정적으로 이야기해줘선 안 된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떡해야 할까? 엄마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도 방법이다.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고민하도록 해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돕는다.

○성적이 떨어지면 날 다르게 대할 거야… ‘민감’형

최상위권 학생들은 민첩하고 영민하다. 이들은 이해력이 좋아 학습뿐만 아니라 사람관계에서도 판단력이 빠르다. 이런 학생은 자신이 성적이 잘 나왔을 때와 부모의 표정, 교사의 반응, 또래친구들의 반응을 안다. 따라서 ‘성적이 떨어지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으로 달라진다’고도 생각한다. 마음에 상처도 쉽게 받는다.

이렇게 섬세한 학생은 성적 변동으로 인한 다른 사람의 반응에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우선 부모가 꾸준히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며 자녀의 마음에 쌓인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줘야 한다.

자녀가 주변 반응에 민감하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학업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라. ‘성적을 올리면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목표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내가 음악가가 돼 유학을 갈 때 도움이 될 거야’ ‘나는 나중에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는 의사가 될 거야. 그러려면 지금 성적을 올려놔야지’처럼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과 현실을 연계하도록 만든다. 희망을 갖고 목표를 설정하면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다.

○ 네가 ‘전교 1등’이라며?… ‘부담’형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김모 군(18·서울 강남구)은 지금까지 모의고사와 내신 시험에서 서너 번 전교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반 친구들은 항상 그를 ‘전교 1등’이라 부른다. 가족들이나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김 군은 “내가 항상 전교 1등을 하는 것은 아닌데 다들 ‘전교 1등’이라 치켜세워준다”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최상위권은 가족이나 지역사회에서 아무리 대접해줘도 ‘그들만의 리그’에 몰입한다. 최상위권 사이의 경쟁 말이다. 그것은 그 어떤 경쟁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최상위권 학생은 ‘나는 공부를 잘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가 최상위권의 경쟁자(들)보다 성적이 낮게(높게)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따라서 ‘전교 1등’ ‘제일’ ‘최고’라는 수식어는 부담이 된다.

친구들이 부르는 ‘전교 1등’ 별명을 부담스러워한다면 “너는 점수가 낮은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성적이 좋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으니 얼마나 좋냐”고 말을 건네면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이후 극심한 성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네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해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각인시킬 수도 있다. 자녀에게 ‘항상 1등일 순 없다’ ‘너는 항상 잘하고 있다’며 안도감을 줘 성적 하락에 따른 불안함을 없애줘야 한다.

○ 다른 아이들과 말이 안 통해…‘자기중심’형


최상위권 성적을 지닌 학생 중에는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내 주변에는 나와 어울리는 친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또 다른 열등감의 표시다. 다른 그룹에 쉽게 속하지 못해 ‘어울릴 수 없다’고 선을 긋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나는 공부를 잘하니까 최고’라는 성적제일주의에 빠져 있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이런 유형의 아이를 둔 학부모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자녀의 말에 공감해주면 안 된다. ‘저 친구는 체육을 잘한다’ ‘저 친구는 춤을 잘 춘다’는 긍정적인 말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존중하도록 지도한다. 성적이 아닌 다른 가치가 많음을 알려주는 것. 자녀의 사고가 열리면 타인을 존중하고 집단과 어울리는 법도 저절로 깨우치게 된다.


도움말 :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 서울서부교육청 Wee센터 박미라 센터장, 경기 군포고 김나미 상담교사,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이향숙 소장 (왼쪽부터)

유명진 기자 ymj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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