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敵이지…” 한국전 참전 美노병들, 행군 멈추다

  • Array
  • 입력 2011년 4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2사단 참전용사회 61년만에 ‘슬픈 해산’… 뉴올리언스서 마지막 모임

《 홍안의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해 자유 수호를 위해 피를 바쳤던 백발의 미군 참전용사들이 쓸쓸한 해단식을 열었다. 20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인터콘티넨털호텔 연회장에서 열린 미 제2보병사단 한국전 참전용사회 연례 정기모임에서는 “모임을 지속할 것이냐,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 것이냐”라는 안건을 놓고 투표가 진행됐다. 모임을 계속하자는 의견은 참석자 79명 중 4명에 그쳤다. 이로써 20년 전 출범한 제2보병사단 한국전 참전용사회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가진 뒤 7월 31일부로 해체된다. 》
척 한킨스 미 제2보병사단 한국전 참전용 사회 회장이 20일 뉴올리언스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체 해체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타임스피키윤
척 한킨스 미 제2보병사단 한국전 참전용 사회 회장이 20일 뉴올리언스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체 해체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타임스피키윤
이 단체의 척 한킨스 회장(79)은 뉴올리언스 지역신문인 타임스피키윤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모임이 계속되기를 원하지만 여력이 있는 사람도, 여력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없다. 양동이의 물은 이미 말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마다 정기모임에 몇 명이 참석할지를 가늠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와해되느니 차라리 보기 좋게 그만두는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 모임의 해체는 이제는 70, 80대 고령에 접어든 노병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웅변해주고 있다. 노병 대부분이 자신 또는 가족에게 닥친 병마와 싸우느라 조직을 유지할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2사단 참전용사회는 한때 회원이 3000명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2100명만 남았다. 생존 회원들의 평균 나이는 83세다. 휴스턴에서 온 빌 호지 씨(78)는 “지난 모임에 참가했던 회원들 중 많은 이가 병과 사망으로 이번엔 참석하지 못했다”고 했고, 워싱턴에서 온 돈 코언 씨(78)도 “이제는 진격할 사람이 없다”고 쓸쓸히 말했다.

이들이 젊음을 바친 미 제2보병사단은 6·25전쟁 중 미국 본토에서 최초로 한국에 도착해 미군 사단 중 가장 많은 전투를 치른 부대다. 낙동강 전선에서 청천강까지, 다시 지평리 전투와 피의 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항상 가장 어렵고 중요한 전선에 서다 보니 2만5000여 명의 막대한 피해(전사 7094명, 부상 1만6237명, 실종 186명, 포로 1516명)를 입었다. 전쟁 후에도 계속 한국에 주둔하면서 자유 수호의 첨병 역할을 이어갔다. 94년의 사단 역사 중 미 본토에 주둔한 기간은 40년이지만 한국에는 50년을 주둔하고 있다. 앞으로 공식 해체까지 남은 3개월간 참전용사회는 캐비닛 8개에 가득 찬 방대한 양의 한국전 기념 자료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참전용사의 아들이 운영하는 민간연구단체인 ‘코리안워프로젝트’에 넘길 예정이다.

미국의 다른 참전용사 단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 국방부 대외연락사무소 데이비드 에번스 부국장은 “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 사라지는 많은 노병 단체 중 하나”라면서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해단식을 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재향군인청은 매일 400명의 한국전 참전용사가 사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천상륙 50주년 행사에 참석 2000년 9월에 열린 인천상륙작전 5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미 제2보병사단 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원들. 참전용사회 홈페이지
인천상륙 50주년 행사에 참석 2000년 9월에 열린 인천상륙작전 5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미 제2보병사단 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원들. 참전용사회 홈페이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사이에 끼여 미국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전쟁’으로 불렸던 한국전쟁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 및 민주화로 인해 미국 역사에서 ‘보람된 희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참전 60주년 행사를 계기로 많은 재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관심은 미국 중앙정치권과 학계 차원일 뿐이다. 이번 2보병사단 참전용사회의 해체가 보여주듯 한국 현대사의 귀중한 목격자이며 참여자인 노병들은 세월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퇴장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