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에듀칼럼]고3 담임으로 또 한해가 지났구나 사랑한다, 얘들아! 보고 싶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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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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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 서울 이화여고 국어교사
권양숙 서울 이화여고 국어교사
1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서로 얼굴 들여다보고 고락(苦樂)을 함께 한 제자들아. 너희들에게 길고도 짧았던 한 해가 끝났구나. 한 해의 길이는 분명 물리적으로 같을 텐데, 고3 담임을 맡았던 한 해는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2010년 3월 2일. 고3이라는 압박감에 얼어붙은 얼굴을 하고 새 담임선생님을 기다리던 너희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교실 문을 열고 교탁으로 걸어가는 짧은 시간, 너희들이 빠른 속도로 나를 읽는 것을 느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교탁에 출석부를 내려놓고 5층 계단을 올라오느라 가빠진 숨을 돌리고 나도 너희들을, 천천히, 1분단부터 4분단, 1열부터 5열까지 빠르게 읽어갔지.

강 양부터 황 양까지 37명. 호기심이 이는 얼굴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얼굴. 표정을 감추려는 얼굴과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 지난 23년간 그러했던 것처럼 처음 만난 너희들의 얼굴과 표정은 그 자체로 소우주였단다.

속으로 되뇌었다. 이중에서 몇 명은 성적이 오르겠고, 몇 명은 오르지 않아 좌절하겠지. 어떤 친구는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 고민할 것이고, 다른 친구는 체력이 부족해 힘들어하겠지.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고민인 아이도 있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어 속상한 아이도 있겠지. 나와는 기질이 잘 맞지 않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학창시절의 나를 연상시키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37명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돌봐야 하리라. 난감한 경우가 생겨도 이해하자. 시간이 부족하면 이해를 구하자. 많이 사랑하자. 더 많이 사랑 받아 마땅한, 가능성이 큰 아이들이니까. 나는 어른이며, 내가 맡은 이 아이들은 지금 누구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한 청소년이다. 난 고3 담임이니까 아프지도 말아야 하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은 37명 이름을 30분 안에 외울 것!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1년 2월 9일. 새처럼 가볍게 웃고 재잘거리면서 졸업 ‘인증 샷’을 찍으러 온 너희들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젊음이 좋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좀더 혹독하게 공부시켜야 했다는 아쉬움도 고개를 들었다. 아니다, 아니다. 좋은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은 후회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또 다른 라운드를 치르러 가는 것이니 오늘은 마땅히 축하해주자. 나는 ‘징검다리’니까.

마지막 종례를 하러 교실로 향했다. 5층 계단을 오르는 내 발길은 1년 전보다 한결 느려졌다. 그건 여유가 아니라 회한이 가득한 걸음. 교실 문이 열리고 나는 천천히 교탁으로 가서 너희들을 봤다. 가까이 앉은 아이의 발, 무릎, 어깨, 머리 순으로. 내 얼굴엔 엷은 미소가 얹혀 있었다. 많이 달라졌구나. 너희들, 1년 동안 정말 많이 컸구나. 졸업과 대학 합격의 기쁨만큼 낙방과 좌절의 아픔도 많이 느껴지더구나. 그러나 아직은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 이르단다.

교실 뒤 함께 하신 부모님들의 얼굴과 표정도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으시는 분, 손을 흔드시는 분, 목례를 하시는 분. 너희들이 있기에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어른들을 얘들아, 기억하기 바란다.

내 품에서 세상으로 날아간 많은 친구들처럼 너희들도 크고 작은 인생 이야기를 품에 안고 들려주렴. 선생님은 또 다른 학생들을 맞이해 30분 안에 이름을 다 외우려고 노력하며 학교를 지키련다. 얘들아, 사랑했다. 보고 싶을 거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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