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선장 총상 계기로 본 중증외상환자 치료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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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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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의료진 없어 헤매다 年 1만명 ‘안타까운 죽음’

건설노동자인 이모 씨(45)는 지난해 11월 경기 용인시의 한 공사현장 건물에서 떨어진 철제 빔에 깔렸다. 사고가 나자마자 동료들은 급하게 이 씨를 10분 거리의 작은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병원 측은 “부상이 심해 이곳에서 치료하기가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동료들은 병원 측이 제공해준 응급차로 중증외상센터가 있는 아주대병원으로 달렸으나 이미 사고 발생 후 2시간 정도가 지났다. 의료진은 즉시 배와 폐 속에 피가 고인 증상을 확인하고 수술을 준비했으나 이 씨는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 숨을 거뒀다. 당시 이 씨를 맡았던 의료진은 “사고 직후 출혈을 막는 응급조치 등 적절한 외과치료를 받았다면 살았을지 모른다. 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며 안타까워했다.

○ 연간 9000여 명이 안타깝게 사망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소말리아 해적의 총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현지에서 신속한 전문 외상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서울대 의대 연구진에 의뢰한 외상센터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외상으로 인한 사망자는 2만8359명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진이 사망한 외상환자에 대해 부상 정도를 따져 생존 확률을 추산한 결과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사망자(사망 예방가능 환자)는 9245명(32.6%)에 달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서길준 교수(응급의학회 이사장)는 “살 수 있는 환자가 매년 1만 명 가까이 죽는다는 의미”라며 “권역별 외상센터를 갖춰 쓸데없는 이동시간만 줄여도 죽을 위기의 환자를 최소 1200명은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외상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등의 물리적 충격으로 인한 상처를 가리키는 말. 외상 사망은 암과 뇌혈관질환 등에 이어 한국인 사망 원인 수위에 올라 있다. 특히 40대 이하 젊은층의 외상으로 인한 사망률은 더 높다. 이러한 사망률은 선진국의 두 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 턱없이 부족한 외상 전문병원


현재 국내 외상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을 운영하는 병원은 30여 곳이 있지만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외상센터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상외과에 정통한 전문의가 매우 적고, 의료 선진국과 같이 외상환자 이송과 검사 및 치료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외상전문 치료는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각 병원에서 외상센터 설립을 꺼린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복지부는 6개 권역별(수도권북부·남부 충청권 호남권 경북권 경남권)로 한 곳에 최고 수준의 외상센터를 설치하고 헬리콥터 환자 이송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해 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고 이르면 이달 안에 결과가 나온다. 결과에 따라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일부 의원은 법 개정을 통해 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국고 보조를 보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8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응급의료법을 고쳐 응급의료기금 마련 제한을 풀고 외상센터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며 “공청회 및 당정협의를 거쳐 내년에 외상센터 사업이 시작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도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권역별 외상센터 설치와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정부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바 있다.

○ 외상전문의 육성도 시급


외상외과 전문의가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국내 외상전문의는 석 선장을 치료한 아주대 이국종 교수를 비롯해 손에 꼽힐 정도다. 지난해 처음으로 외상외과 제도가 도입돼 전문의 80여 명이 처음으로 배출됐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 충분한 인원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곽홍 부산 해운대백병원 외상센터 자문교수는 “지난해 배출된 외상외과 전문의는 아직 초기단계라 훈련이 더 필요하다”며 “전문적인 중증 외상센터 설립과 함께 이곳에서 전문의를 체계적으로 키워내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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