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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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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인 교육열까지 더해 자기계발 열풍이 불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사이버대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것.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 19개 사이버대에 입학한 학생은 총 2만3979명이다.

사람이 모인 자리에는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들고 오기 마련. 검정고시로 일찍 고교를 졸업하고 사이버대로 대학 과정을 마친 뒤 오프라인 명문대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10대도 있고, 오프라인 대학과 학원에서 못 이룬 경찰 공무원의 꿈을 사이버대에서 이룬 20대도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고 배우며 더 나은 ‘나’로 거듭나려 사이버대를 선택한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허정윤 씨(32·여)는 MBC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 아이 좋아’의 아리 마법사로 어린이들한테는 친숙한 인물이다. 허 씨는 ‘허정윤 연구소’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면서 동화를 쓰고 클레이 아트를 가르친다. 누가 봐도 천생 ‘어린이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허 씨의 원래 전공은 사진이다.

“어릴 때부터 동화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직접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동화책을 만들었죠. 아무도 안 내준다고 해서 100군데가 넘는 출판사를 돌아다닌 끝에야 ‘어부바’라는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요. 그 뒤로 계속 책을 쓰고 동요도 만드는데 ‘아, 내가 아이들을 너무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 허 씨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책을 읽었지만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허 씨는 지난해 한양사이버대 아동학과 3학년에 편입하면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학생들이 무척 많은데 부모님들은 잘 인정을 안 하세요. 그걸 잘 돌려 말하는 법도 학문으로 정리돼 있는 줄은 몰랐죠. 또 아이가 ADHD로 문제 행동을 일으킬 때도 보상으로 대처해 주는 방안처럼 구체적인 행동 방법을 배우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인 것 같아요.”

허 씨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허 씨는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나눔교육 홍보대사다. 장기적으로는 빈민국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는 게 목표다. 허 씨는 지난해 10월에도 아프리카 말리를 방문하는 등 ‘희망의 학교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이버대 좀 다닌다고 뭐가 달라지냐고요? 사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막상 다녀보니까 이게 학습량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또 체계를 갖춰 놓고 공부하는 건 혼자 하는 거랑 확실히 다르죠. 더 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사이버대 문을 두드려 보세요.”

지난해 고려사이버대 졸업식에서 전체 수석에게 주는 총장상을 받은 인물은 수녀였다. (재)성바오로딸 수도회 소속 김정미 벨라뎃다 수녀(43)가 그 주인공. 김 수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성바오로딸 수도회를 “출판 업무를 통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김 수녀가 맡고 있는 일은 전산팀장이다.

“수녀회에서 5년 동안 양성 교육을 받는데 그때 전산실에서 1년 일했어요. 그걸 계기로 정식 수녀가 된 다음에도 천주교 인터넷 서점과 수도회 홈페이지 개발 및 운영, e북 개발 같은 업무를 맡았죠. 처음부터 컴퓨터를 잘했냐고요? 아니요.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공부했던 거죠.”

정보기술(IT) 전공자가 아니었던 김 수녀가 찾아간 곳은 컴퓨터학원. HTML이 궁금하면 HTML 학원에 다니고, C언어 공부가 필요하면 C언어 학원을 다니는 식이었다. 그렇게 늘 퍼즐의 빈곳만 채우다 보니 큰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고려사이버대 컴퓨터정보통신학과다.

“매일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오후11시에 잠들 때까지 기도하고 전산실 업무 보고 공부하고 정신이 없었죠. 그래도 다들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어요.”

김 수녀가 사이버대 공부로 실력을 쌓자 수도회 안에 자기 계발 붐이 일었다. 김 수녀가 입학한 다음 학기부터 수녀들이 하나 둘 사이버대 문을 두드린 것. 사이버대에 입학하는 수녀들 수가 늘면서 자신이 솔선수범해야겠다는 생각도 커졌다. 가장 중요한 건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

“어느 날인가 새벽까지 4, 5시간 동안 컴퓨터 프로그램하고 씨름한 적이 있었어요. 쉼표 하나, 숫자 하나만 틀려도 제대로 작동 않는 게 컴퓨터 프로그램이니까요. 그러다 문제 원인을 찾게 됐고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걸 보면서 ‘아, 이 맛에 프로그램 하는 거구나’ 하고 희열을 느낄 수 있었죠.”

이미 사이버대는 졸업했지만 김 수녀는 요즘 웹 프로그래밍과 경영 공부에 열심이다. 제각각 흩어져 있는 컴퓨터 서버 시스템을 통합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경영 공부도 필수라는 게 김 수녀의 생각이다. “우리 수도회는 세계적인 수도회여서 제가 배운 지식으로 다른 나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T를 통해서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박경희 씨(74·여)는 지난해 원광디지털대 약물재활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박 씨는 68세에 이화여대 사학과를 약 50년 만에 졸업했다. 결혼을 하면 자동으로 대학중퇴가 돼 학업을 그만둬야 했던 박 씨는 재입학 제도가 부활돼 졸업할 수 있었다.

50년 동안 소원이던 졸업을 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박 씨는 “이제 자식 걱정도 없고 살림 부담도 없으니 오직 할 건 공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사이버대였다. 인터넷도 할 줄 몰랐지만 어디서나 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박 씨 남편이 적극 추천했다. 박 씨는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에 원광디지털대 약물재활복지학과에 편입했다.

약물재활복지학과는 약물 의존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전문가를 양성한다. 여기서 약물은 합법적으로 허용된 담배, 알코올부터 마약류까지 모두 포함한다.

처음에는 전공이 너무 생소했다. 그러나 배우면 배울수록 약물재학복지학이 얼마나 필요한 학문인지 알게 됐다. 박 씨는 “요즘은 가정이 불안한 사람이 많아 꼭 마약이 아니더라도 약물에 중독된 사람이 많다”며 “사람들은 약물에 중독되면 얼마나 무서운 인생을 보내게 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새 학기부터는 손녀 장재은 씨(25)도 대학 생활을 같이하게 됐다. 2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하는 장 씨는 할머니의 권유로 원광디지털대에 편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장 씨는 “봉사를 많이 하고픈 꿈도 이룰 수 있고 ‘나닥’ 자격증을 취득해 국제적인 상담사가 되고 싶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나닥(NAADAC)은 1972년 미국에서 창립된 알코올과 약물남용 상담가들의 국제적인 협의체다. 원광디지털대는 지난해 한국 나닥과 산학협력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약물재활복지학과 재학생은 미국 나닥의 현지 인턴사원으로 연수를 받을 수도 있다.

졸업생들은 장 씨처럼 나닥 자격증뿐 아니라 약물재활복지사나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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