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장애인 ‘보조기구’ 이용 실태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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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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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기구 모르는 장애인 태반… 알아도 수백만원 고가에 체념

《경기 안산시에 사는 주부 이윤미 씨(34)는 하루에 한 번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 이영훈 군(8)의 머리를 감기는 일이다. 이 군이 앉지도 못하기 때문에 갓난아기처럼 안아서 씻겨야 한다. 몸무게가 20kg이 넘는 이 군을 안고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다. 그런 이 씨에게 1년 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7월 아름다운재단이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경기도재활공학센터)를 통해 이 군에게 맞춤형 의자 및 책상, 목욕용 의자 등 보조기구를 기증한 것이다. 이를 모두 구입하려면 어림잡아 6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이 씨도 보조기구의 편리함을 알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임대 서비스에 만족했었다. 이 씨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커갈수록 돌보는 데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며 “아이 돌보는 일이 보조기구 때문에 한결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 장애인 인생 바꾸는 보조기구

상당수 장애인이 정보 부족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보조기구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이영훈 군이 최근 경기도재활공학센터를 통해 맞춤형 책상과 의자를 기증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경기도재활공학센터
상당수 장애인이 정보 부족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보조기구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이영훈 군이 최근 경기도재활공학센터를 통해 맞춤형 책상과 의자를 기증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경기도재활공학센터
이 군이 쓰는 의자와 책상 등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별것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군과 가족이 느끼는 삶의 질은 크게 바뀌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2학년인 서주영 씨(20)도 마찬가지다. 서 씨는 네 살 때 안압에 문제가 생겨 현재 앞을 거의 보지 못한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반학교에서 맹학교로 옮겼다. 맹학교에서는 다양한 보조기구가 교내에 마련돼 있어 공부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자 강의 필기부터 리포트 작성, 정보 검색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문서를 점자로 바꿔주는 시각장애인용 개인휴대정보기(PDA)가 있지만 500만 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작해야 집 근처 복지관에서 일정 기간 빌려 쓰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구형 기종이 많아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에게 최신 점자PDA가 생긴 것은 올 8월. 삼성SDS가 경기도재활공학센터를 통해 서 씨에게 기증했다. 서 씨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점자PDA는 절실하다”며 “반납하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 씨와 이 군은 아주 특별한 수혜자다. 아직도 상당수 장애인이 보조기구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이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 실제로 보조기구를 체험하고 빌려 쓸 수 있는 곳은 2004년 설립된 경기도재활공학센터와 2008년 말 문을 연 서울지역 2개 기관이 전부다. 지역별로 민간업체들이 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오길승 경기도재활공학센터장(54·한신대 재활학과 교수)은 “이곳처럼 다양한 보조기구를 체험하고 빌려 쓸 수 있는 곳이 최소한 광역자치단체마다 1곳씩 설치돼야 한다”며 “일단 체험을 해봐야 수요가 생기고 시장이 형성돼 업체들도 연구개발과 제작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국회에서 잠자는 지원 법안

현 정부 들어 보조기구 관련 법안이 3건이나 발의됐지만 다른 현안들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서울 강동을) 등이 발의한 보조기기 지원 및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기구 이용시설을 만들고 관련 산업의 활성화를 지원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애인들의 보조기구 접근성을 높여 이용률을 높이고 나아가 산업화까지 이끌어내는 취지의 법안이지만 아직까지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법안을 발의한 윤 의원은 “보조기구 사용을 늘리려면 국산화 및 의료비 경감이 시급하다”며 “정부가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해 예산 지원 및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기도재활공학센터 등 관련 기관 20곳으로 구성된 한국보조공학서비스기관협회는 20일 긴급회의를 갖고 법률 제정을 위한 1인 시위와 서명운동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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