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딸들, 다 어디로 갔나]‘가포녀’ 아니면 ‘여삼추’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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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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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여성 발목을 잡나

여성사원이 많은 유통 기업인 A사의 경우 2003년 대졸 신입사원으로 남성 20명, 여성 10명이 입사했다. 현재 남아 있는 직원은 남성 17명, 여성 5명. 7년 만에 남성은 15%, 여성은 50%가 회사를 그만둔 것. 다른 유통 회사인 B사도 2003년 대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여성 17명 가운데 현재 남은 인원은 8명이다. 7년 만에 52.9%가 그만둔 셈이다.

A사 인사담당 팀장은 “여성사원은 둘째 아이를 낳으면 퇴사한다고 보면 거의 맞다”고 말했다. 첫아이는 부모나 친지의 도움, 남편과의 육아 분담 등 여러 방법으로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도 있지만 둘째 아이를 낳으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 때문에 “기업에서 대졸 여성직원 정년은 30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육아를 해야 하는 직장 여성들의 경우 아이에게 신경 쓰다 보면 자칫 ‘직장 경쟁력’은 떨어질 수 있다. 셀리 코렐 스탠퍼드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조건이 모두 동일한 상태에서 아이가 있는 여성은 없는 여성보다 연봉 협상에서 1만1000달러(약 1200만 원) 정도를 적게 제안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이를 두고 ‘엄마 벌점(Motherhood Penalt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정 지위에 오르기 위해 ‘표준적인 가족 구성’을 포기한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다. 2008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전국 315개 기업의 여성관리자 1774명 가운데 △미혼 △이혼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는 경우에 하나라도 해당하는 여성관리자는 총 611명(34.4%)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관리자의 약 35%가 그 지위에 오르기 위해 일반적인 가정을 포기한 것이다. 이른바 ‘가포녀(가정을 포기한 여성)’다. 이러다 보니 ‘가포녀’가 아니면 ‘여삼추(대졸 여자들은 30대에 추락)’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도 여성의 중도 탈락을 부추기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여성 374명을 대상으로 직장 여성의 퇴직 사유를 조사한 결과 육아와 출산(67.9%)을 제외하면 남녀 승진 차별(11.2%), 남녀 연봉 차별(9.4%), 남녀 업무 차별(6.1%), 직장 내 성희롱(2.1%) 등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에 입사하는 능력 있는 여성이 늘어나도 중간관리자 이상의 여성은 여전히 정체돼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양인숙 박사는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이 크게 증가하는 것만 주목하면 일종의 착시현상에 빠질 수 있다”며 “육아문제를 기업과 정부가 분담해 주지 않는다면 여성인력 문제는 계속 원점을 맴돌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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