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언어영역/처음 본 지문, 겁먹지 말고 주의깊게 ‘주어진 상황’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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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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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피하기 12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에서 평이한 수준의 문제를 많이 출제하고 있다. 이런 수능 언어영역 출제 기조는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출제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함정에 빠져 문제를 잘풀지 못할 수도 있다.》

언어영역에서 고득점을 받은 학생들 중 올해 6월 평가원 모의평가에서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당황해한 학생이 적지 않다. 1등급 구분점수가 원점수로 93점, 평균이 64점이고 만점자도 1585명으로 전년도와 비슷했는데 점수는 평소보다 떨어진 것.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수험생들이 조급한 마음에 문제를 성급하게 풀었거나 또는 쉽고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이해해 풀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가 쉬웠는데 점수가 낮았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6월 모의평가 문제를 분석해 보자. 1등급과 2등급을 가른 문제는 대체로 난도가 높았거나 EBS 방송교재와의 연계가 적은 문항이었다. 수험생들은 바로 이 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6월 모의평가에서 1, 2등급을 가른 문항 중 정답률이 다른 문항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났던 문제는? 바로 고전시가인 허전의 ‘고공가’와 관련해 출제된 문제였다. 수능에 자주 출제된 이 작품은 교과서에는 없고 ‘EBS 인터넷수능 시문학’에 실려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미리 접하지 않은 수험생은 생소한 작품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수험생들은 생소한 작품을 접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데, 이것이 종종 함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답지나 지문으로 제시된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실제 문제를 보자.

[예문] 2011학년도 6월 수능 모의평가 39∼43번 지문


(나) 요사이 고공들은 생각이 어찌 아주 없어/밥사발크나 작으나 동옷이 좋고 궂으나/마음을 다투는 듯 호수(戶首)를 시샘하는 듯/무슨 일 감겨들어 흘깃할깃하느냐/너희네 일 아니하고 시절조차 사나워/가뜩이 나의 세간 풀어지게 되었는데/엊그제 화강도(火强盜)에 가산(家産)이 탕진하니/집 하나 불타버리고먹을 것이 전혀 없다/(중략)/칠석에 호미 씻고 김을다 맨 후에/새끼꼬기 누가 잘하며 섬은 누가 엮으랴/너희 재주 헤아려 제각기 맡아 하라/가을걷이한 후에는 집짓기를 아니 하랴/집은 내지으마 움은 네 묻어라/너희 재주를 내 짐작하였노라/너희도 먹을 일을 분별을 하려무나/멍석에 벼를 넌들/좋은 해 구름끼어 햇볕을 언제 보랴/방아를 못 찧거든 거치나 거친 올벼/옥 같은 백미 될 줄 누가 알 수 있겠느냐/너희네 데리고 새 살림 살자 하니/엊그제 왔던 도적 아니 멀리 갔다 하되/너희네 귀 눈 없어저런 줄 모르건대/화살을 제쳐 두고 옷 밥만 다투느냐/너희네 데리고 추운가 굶주리는가/죽조반(粥早飯) 아침 저녁 더 많이 먹였거든/은혜란 생각 않고 제일만 하려 하니/생각 있는 새 일꾼 어느 때 얻어서/집일을 마치고 시름을 잊겠는가/너희 일 애달파 하면서 새끼 한 사리다 꼬겠도다.
- 허전, ‘고공가(雇工歌)’

임진왜란 전후 백관들의 탐욕과 정치적 무능을 비판하는 이 글과 관련해 출제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수험생들은 대체로 ③번을 정답으로 선택했다.

***

42. <보기>를 참고하여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고공가’는 전란으로 인해 황폐해진 나라를 재건하자는 의도에서 지어진 노래로, 국가 정치를 한 집안의 농사일에 비유하여 관료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① ‘고공’이 반목과 질시를 일삼는 것으로 보아 조정에는 불화가 있었군.

② ‘나’가 ‘고공’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관료 사회에는 불신이 팽배했군.

③ ‘나’는 외적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외적의 재침략을 걱정하고 있군.

④ ‘나’가 집안의 일을 염려하는 것으로 보아 ‘나’는 성공적인 국가 재건을 바라는 인물이군.

⑤ ‘고공’이 ‘옷밥’만 탐했다는 것으로 보아 관료들은 본 분을 잊어버리고 사욕만을 채우고자하였군.

***

<보기>는 (나)를 국가 정치에 빗대어 노래한 작품으로 감상할 것을 요구한다. ‘고공’들이 ‘밥사발 크나 작으나 동옷이 좋고 궂으나/마음을 다투는 듯 호수를 시샘하는 듯’한 부분을 통해 반목과 질시를 조정의 불화로 이해할 수 있다(①).

‘엊그제 왔던 도적 아니 멀리 갔다 하되/너희는 귀 눈 없어 저런 줄 모르건대/화살(→도적과 싸워 물리치기 위한 도구)을 제쳐 두고 옷 밥만 다투느냐’는 화자(‘나’)가 외적의 재침략을 걱정하고 있는(③) 데 반해 고공, 즉 관리들은 본분을 잊어버리고 사리사욕만을 채우고자 함(⑤)을 나타낸다.

한편 이 노래의 화자인 ‘나’는 고공들을 부리는 주인으로 표현돼있는데, ‘너희 재주 헤아려 제각기 맡아 하라’ ‘너희 재주를 내 짐작하였노라’ 등을 볼 때 ‘나’가 고공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고공들이 재주와 능력은 있지만 ‘옷 밥만 다투는’, 즉 사리사욕을 일삼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화자는 ‘고공’이 마음만 바르게 먹으면 나라를 경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능력은 인정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나’가 ‘고공’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근거로 관료 사회의 불신이 팽배했다는 의견은 적절치 않다. 정답은 ②번.

<보기>에서 ‘고공가’는 전란으로 인해 황폐해진 나라를 재건하자는 의도에서 지어진 노래라고 했다. 따라서 화자인 ‘나’는 국가 재건을 바라는 인물로 볼 수 있으므로 ④번은 옳다.

다른 지문을 하나 더 보자.

[예문] 2003학년도 3월 서울시교육청 모의평가 54번 지문

(나) 초혼(招魂)

김소월 지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B]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비교적 낯익은 이 시에서 출제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

54. [B]와 유사한 정서가 드러나 있는 것은?

①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 (城)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 이육사, ‘꽃’

② 처마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 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김광균, ‘설야’

③ 당신을 따라가다 따라가다/ 그만 빈 갯벌이 되어 눕고 말았다/ 쓸쓸한 이 바다에도 다시 겨울이 오고 물살이 치고/ 돌아오지 못한 채 멈추어 선 나를/ 세월은 오래도록 가두어 놓고 있었다. - 도종환, ‘섬’

④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유치환, ‘깃발’

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 서, 철이야, 너는 늴 늴 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실 두둥실 봉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 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

***

[B]에는 임과 나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거리가 나타나 있는 것은 물론 만날 수 없는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도 형상화돼 있다. 또한 그리움과 미련 때문에 선 채로 돌이 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③을 보면 화자는 임과의 거리를 느끼고 있다. 떠나간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풀 길이 없어 오랜 세월 동안 섬이 돼 임이 떠나간 그 곳에 머물러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도 나타나 있다. 따라서 ③은 간절한 그리움과 미련이 형상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①에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소망과 신념이 드러나 있다. ②에는 눈 내리는 밤의 외로움과 서글픔이 표현돼 있다. ④는 이상 세계에 대한 염원과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 인식에서 오는 슬픔이 나타나 있다. ⑤에는 조화로운 삶이 펼쳐지는 세상에 대한 소망이 드러나 있다.

이 문항은 정답률이 높지 않았고 변별도도 매우 낮았다. 오답지 ①의 반응률은 32%로 정답률과 비슷했다. 이는 ①이 학생들에게 다소 낯선 시의 일부만을 제시해 내용 파악이 어려웠던 데다 정답지로 제시된 시도 낯설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①에 제시된 시를 잘 몰랐던 학생들은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를 사별의 정한으로 읽었을 것이다.

정답지와 매력적인 오답지를 모두 낯선 시로 구성하는 경우에는 정답률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시의 전문이 아니라 일부만 제시되는 경우에는 주어진 부분을 꼼꼼히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낯선 작품이 제시되고 등장인물 또는 시적 화자의 심리나 태도를 파악하는 문제가 주어질 때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주어진 부분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B]에서는 시적 화자가 ‘사랑하던 그 사람을 (부르다가 죽더라도) 소리쳐 부르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사랑하던 그 사람’을 향한 사별의 정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작품이 주어진다고 해도 지레 겁을 먹지 말고 주의 깊게 읽으면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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