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試 준비생들에 폭탄 던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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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 축소’ 발표에 “개천서 용날 기회 막나” 고시촌 한숨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입니다.”

“한창 예민한 시점에 고시생들에게 폭탄을 던진 것입니다.”

행정고시 합격 인원을 대폭 줄인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된 다음 날인 13일. 고시학원과 수험생이 밀집한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동) 고시촌에서 만난 수험생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수험생들은 독서실이나 고시학원 앞에 모여 바뀌는 제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정부 발표에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인 행정고시마저 결국 폐지되는 건가” 하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나왔다.

○ 도전의 기로에 선 수험생들


대다수 수험생이 이번 발표가 나온 12일 저녁에 부모님과 향후 계획을 상의했다고 전했다. 학교를 밝히기를 거부한 대학생 이연주 씨(22·여)는 “내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공부를 그만두기로 어머니와 약속했다”며 “1차시험(PSAT·공직적합성평가)과 2차시험 과목을 병행하며 한창 공부해야 할 시점에 이런 소식을 들으니 더 예민해진다”고 말했다. 2차시험 응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서울대 중문과 4학년 정승진 씨(26)도 “5급 행정고시라는 상징적인 이름이 변경되는 것도 수험생에게는 매우 큰 변화로 다가온다”며 “내년에는 공직 관문이 더욱 좁아지는데 취직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도

좋은 집안에서 양질의 교육과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고위 공직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배호용 씨(28)는 “그동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만든다고 사법시험 정원을 줄이고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만든다고 의대 정원을 줄여와 ‘이제 남은 건 행정고시뿐’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이제 고시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 사라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려대 철학과 4학년 김모 씨(24·여)도 “공직사회에 민간 분야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좋은 집안에서 많은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공직에 쉽게 진출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 “내년까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

고시학원가에는 향후 공무원시험 일정을 문의하기 위한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한림법학원은 아예 행정고시 채용방식 개편에 대한 보도자료를 요약해 학원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을 정도다. 한림법학원 관계자는 “신규 채용비율이 30%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내년도 행정고시 일반행정직의 경우 합격자가 2, 3명(일반행정직 기준) 감소하는 수준”이라며 “현재도 5급 공무원의 27%가량이 전문가 특채로 충원되고 있어 내년까지는 큰 변화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베리타스학원 김택기 부원장도 “내년에는 사실상 크게 바뀌는 부분이 없는 상황인데도 학생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진행될 계획인데 섣불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많아 상담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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