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쓰고 290억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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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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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값에 기업 사들여 허위 투자공시로 회삿돈 횡령
사채업자가 M&A에 뒷돈도… 악덕 기업사냥꾼 20명 구속

코스닥 상장업체 H사는 지난해 7월 매장량 5조∼10조 원의 몽골 구리광산 사업에 투자한다고 발표한 뒤 같은 해 1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본사사옥 매각대금 290억 원을 몽골 법인 A사의 지분 51%를 취득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투자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결과 H사가 A사를 인수하는 데 든 돈은 실제로는 단돈 100만 원에 불과했으며, 290억 원은 대부분 H사 사주 이모 씨(53·구속)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이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여러 코스닥 상장사의 회삿돈을 빼돌리고 주가조작을 하다가 처벌을 받았으며, 이 씨가 건드린 회사 중 2곳은 상장 폐지된 적이 있다.

이 씨처럼 상장회사를 인수해 온갖 수법으로 회삿돈을 횡령해 ‘단물’만 빼먹은 뒤 회사를 상장 폐지시킨 악덕 기업사냥꾼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는 6월 이후 전국 13개 검찰청에서 상장 폐지됐거나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린 부실기업 30여 곳을 수사해 대주주와 대표이사 등 회사 관계자 20명을 구속하고 18명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받아 추적하고 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이들 외에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60여 명에 이르러 앞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채업자들이 기업사냥꾼들의 부실기업 인수·합병에 ‘뒷돈’을 대고 있다는 소문은 수사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종합도매업체 S사 등 7개 업체는 780여억 원의 유상증자 대금을 사채를 빌려 가장(假裝)납입했다가 들통이 났다. 일부 업체는 이 같은 거래를 정상적인 투자로 꾸미기 위해 빌린 돈 중 일부를 새로 발행한 주식으로 사채업자에게 교부하는 이른바 ‘꺾기’ 수법을 썼다. 사채업자들은 이 과정에서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 주식으로 받은 금액에 대해 고율의 이자를 받거나, 회사 어음 등을 담보로 잡는 이면계약을 맺었다.

기업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공인회계사가 횡령·주가조작에 가담한 사실도 드러났다. 건강보조식품 제조업체 K사 전 대표 한모 씨(43·구속)는 2008년 10월 공인회계사와 짜고 시가 80억 원 상당의 다른 회사 비상장주식 가격을 부풀려 K사가 125억 원에 사들이도록 했다. 한 씨는 이런 수법으로 챙긴 차익 45억 원으로 K사의 주식을 사들여 자기 돈은 한푼도 들이지 않고 K사의 대주주가 됐다. 한 씨는 지난해 11월까지 이른바 ‘작전세력’과 짜고 “460억 원 상당의 일본 수출계약을 체결했다”는 등의 허위공시를 내는 등 무려 912차례에 걸쳐 K사의 주가를 조작했고, K사는 결국 올해 4월 상장 폐지됐다. 한 씨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공인회계사 김모 씨가 “상장 폐지를 면할 수 있도록 분식회계를 눈 감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4900만 원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대상 기업 가운데 상장 폐지된 업체들의 시가총액은 4377억 원이며, 이 가운데 15만4000명에 달하는 소액주주의 손실은 36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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