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000원 구권 위폐가 쏟아졌다… 범인 지문-DNA, 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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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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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77246**’ 번호-지폐만 복사

폐, 작년부터 2600장 발견
폐공-한은-경찰-국정원 수사
문, 시중銀서 복사하다 훼손
만 끼친 은행… 범인 오리무중


한국은행이 공개한 5000원 구권 위조지폐. 선명도가 떨어지는 데다 빛에 비춰 보면 숨겨진 인물 초상이 나타나는 식의 위조방지장치도 없다. 사진 제공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공개한 5000원 구권 위조지폐. 선명도가 떨어지는 데다 빛에 비춰 보면 숨겨진 인물 초상이 나타나는 식의 위조방지장치도 없다. 사진 제공 한국은행
《똑같은 일련번호를 가진 옛 5000원권 위조지폐 2600여 장이 작년 초부터 무더기로 발견됐다. 경찰과 국가정보원, 한국은행, 한국조폐공사가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1년 넘게 사건의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범인을 쫓을 유력한 증거인 위조지폐에 남겨진 지문 가운데 상당수가 시중은행의 무성의한 업무처리 탓에 훼손되는 바람에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

10일 한은에 따르면 ‘다**77246**’이라는 일련번호가 찍힌 5000원 구권 위폐가 지난해 1월 등장한 이후 올해 3월까지 2602장이나 발견됐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301만 원어치다. 번호가 똑같은 데다 컬러복사기를 이용한 위조 방식도 같아 동일범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한은은 조폐공사, 국정원,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로 구성된 ‘위폐방지실무위원회’를 통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범인은 고사하고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한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다.

범인은 옛 5000원짜리 지폐의 위조방지장치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점을 노렸다. 1983년 6월 처음 발행된 5000원 구권은 빛에 비춰 보면 숨겨진 인물 초상이나 태극무늬가 나타나는 초보 수준의 위조방지장치만 적용됐다. 한은은 위조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2002년 6월 부분 노출 은선을 추가한 데 이어 2006년 1월에는 홀로그램, 색변환 잉크, 미세 문자, 돌출 은화 등 첨단 장치를 적용한 신권으로 대체했다.

문제는 신권이 나온 뒤에도 5000원 구권 위폐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3월 한은이 적발한 2040장의 위폐 가운데 5000원 구권은 1398장으로 68.5%를 차지한다. 1000원, 1만 원짜리 위폐는 1년 전보다 각각 73.2%, 62.4% 줄었으나 5000원 구권 위폐만 7.5% 늘었다.

경찰이 수사 중인 위폐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한 수준이고 선명도도 떨어진다. 다만 어두운 곳에서는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분간하기 어려워 야간에 택시나 포장마차 등지에서 다른 화폐들과 섞여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선 경찰도 범인을 추적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조폐공사가 위폐의 잉크와 재질을 분석하고, 국과수가 지폐에 남아있는 땀을 이용해 유전자 분석까지 시도했지만 여러 사람의 손을 타는 지폐의 특성 때문에 증거 확보가 어렵다. 그나마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조차도 시중은행을 거치면서 사라져버렸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원들이 내부 규정에 따라 증거물을 남겨둬야 한다는 이유로 위조지폐를 복사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며 “복사열에 닿으면 지문이 훼손되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수사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경찰은 은행 측에 복사기 대신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좀처럼 협조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한은은 시민의 신고만이 위폐를 근절하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곧바로 지문 채취에 들어갈 수 있고, 인상착의를 알면 검거하기도 쉬워진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의심이 가는 지폐라면 빛에 비춰 확인을 하고, 돈을 접어서 주더라도 꼭 펴서 살펴봐야 한다”며 “되도록이면 만지지 말고 곧바로 봉투에 넣어 가까운 경찰 또는 112로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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