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유제열/사형제 논의 떠넘기는 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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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 결정을 하면서 입법론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제시한 점은 안타깝다. 대한민국 헌법에 관한 최고결정기관이 헌법적인 차원의 판단에 주력하지 않고 입법론적인 차원을 거론한 일은 사실상 헌재가 헌법적 책무를 입법부에 떠넘긴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내부질서 문제를 헌재로 들고 와서 다투던 모습처럼 헌재의 소관인 헌법문제를 입법론적인 논의라며 입법부에 떠넘기듯 한 내용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사형제와 관련해서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자유로운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다. 요컨대 우리 헌법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자주적인 인간상을 전제한다. 따라서 사람은 본인의 결정에 의하여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결국 다른 존재에 종속된 비자주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올바른 헌법사유를 하기 위한 인간상을 잃게 된다. 즉, 당장의 사형제나 여성의 낙태결정 논의도 인간 생명의 자주적 결정권을 전제할 때만 가능해진다. 누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결부된 헌법적 인간사유를 밝힐 때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

올바른 헌법적 사유란 자주적인 인간상에 기초하여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이라는 기본 요소를 종합해서 논의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는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형 제도를 형식적인 규범 논리로만 접근할 경우에 적잖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유제열 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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