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학생들 ‘눈물의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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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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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난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어 부모님을 원망했던 철없는 어린소녀가 이제 부모가 되어서야 배움의 과정을 마치게 됐습니다.”

이 순간 이들에게 졸업장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늦은 나이에 경제적인 어려움, 암 투병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공부를 해온 노인과 중년의 주부 등 늦깎이 학생 651명(양원초등학교-198명, 양원주부학교-453명)이 23일 오전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졸업식을 가졌다.

이날 졸업식은 양원초등학교의 제 2회 졸업식이었다. 이 학교는 ‘초등학교 학력인정에 관한 법령’에 의해 4년제이지만 초등학교 졸업 학력을 인정해 준다. 이곳은 한글과 초등교육 전 과정 외에도 한자, 영어, 컴퓨터, 예절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양원주부학교는 검정고시를 대비한 기초부, 중등부, 고등부, 전문부 등으로 구성된 1년 과정의 평생교육 시설이다.

못 배운 서러움을 딛고 이날 졸업장을 손에 든 늦깎이 양원초등학교 졸업생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졸업식에 참석한 조순덕(84) 할머니는 최고령 졸업생이었다. 나이 때문에 동기들로부터 ‘왕언니’로도 통했다는 조 할머니는 “좋은 시대를 만나서 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 같다”면서 “한글을 배워서 여기저기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편해졌고, 건강하기만 하다면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싶다”고 졸업 소감을 밝혔다.

대장암 3기 판명을 받고 1년간 항암치료를 받아가며 학업을 이어나가 졸업장을 받은 주인공도 있었다. 김순선(61) 씨는 “3학년 때 수술을 받고 진짜 힘들고 괴로웠다. 아파서 학교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며 “당시에 머리가 다 빠지고 피부도 푸르게 변했는데 선생님들과 급우들이 힘과 용기를 주고 감싸줘서 이렇게 졸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서 매일 5시간 넘게 고속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통학했던 장개정(64) 씨, 척추협착증 후유증으로 앉은뱅이 신세의 절망 속에서 공부를 통해 희망을 찾았다는 오소예(50)씨 등도 졸업의 영광을 누렸다.

양원초등학교 이선재 교장은 “부모 탓, 시대 탓, 나이 탓, 여건 탓하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 이룬 여러분의 졸업은 더 의미 있고 훌륭하다”고 축하했다.

졸업생 전별사는 대표로 최명희 씨(54)가 낭독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교문을 들어섰던 기억, 급우들과의 추억, 사회적 역할 때문에 배움의 열정이 가로막혀 힘들었던 시절 등의 내용을 읽어나가자 많은 졸업생들은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졸업식은 졸업생들의 교가제창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의 졸업식에는 취업 준비생의 씁쓸함도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알몸 뒤풀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oas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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