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가장 많이 건넨 장학사는 기소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檢“수사 협조”… 교육비리 면죄부 논란

서울서부지검이 서울시교육청 인사담당 장학사에게 금품을 준 혐의(뇌물공여)를 받는 3명 가운데 임모 씨 등 교사 2명을 불구속 기소하면서도 가장 많은 돈을 건넨 장학사 고모 씨(50·여)는 기소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교사 2명은 먼저 구속 기소된 장학사 임모 씨(50)에게 2008년 “장학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도와 달라”며 각각 현금 1100만 원과 5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임 씨에게 20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는 고 씨는 기소대상에서 빠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8일 “고 씨가 뇌물 공여자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의 제보자인 만큼 기소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검찰은 내부적으로 고 씨를 불기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근거 없는 사실상 플리바기닝”
지난달 12일 장학사 임 씨를 구속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고 씨의 기소 여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앞으로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제보자 고 씨의 ‘입’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장학사 임 씨의 뇌물수수 사건은 제보자 고 씨와 임 씨가 다투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고 씨는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 의견 충돌이 빚어지자 흥분한 상태에서 하이힐로 임 씨를 폭행했고, 고 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이 사람이 장학사 시험에 합격시켜 주겠다며 2000만 원을 받아갔다”고 말한 것. 고 씨는 경찰에서 “또 다른 교사도 임 씨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도 했다.

검찰이 정작 중요한 혐의자가 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것은 법적 형평성을 해치고, 교육계의 고질적인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검찰 수뇌부의 의지를 퇴색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혐의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재판에 회부하지 않는 것은 현행 법제도에는 근거가 없는 사실상의 ‘플리바기닝(유죄협상제)’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플리바기닝은 피의자가 범죄를 자백하거나 더 큰 비리를 털어놓을 때 형량을 낮춰주는 등 죄를 면책해주는 제도로, 아직 우리 형사소송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고 씨의 제보가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고, 비리를 밝히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봐야 하는 만큼 기소 여부를 저울질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경희대 서보학 교수(법학)는 “단지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기소를 하지 않는다면 기소재량권의 남용이 될 수 있다”라며 “기소는 하되 처벌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