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대안학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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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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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승마-SAT특별반 운영… ‘유학-진학형’ 학교 속속 등장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너무 자주 바뀌잖아요. 우리 애가 괜히 희생양이 될까 봐 걱정도 되고 경쟁력 없는 획일적인 공교육을 받는 것도 싫더라고요.”

1월 말 서울 서초구 양재동 양재역 근처에서 열린 A대안학교 입학설명회. 이 자리에 모인 학부모들은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대비반을 운영하는 데다 중국어 교육, 미국 중고등학교 과정의 수업을 진행한다는 A학교의 계획에 솔깃해했다.

“꼭 명문대에 보내려는 욕심이 아니라 (아이가) 영어와 중국어 구사 등 내실 있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찾게 됐지요.” 학부모들은 한 해 수천만 원에 육박하는 학비에는 부담스러운 표정이면서도 “어차피 학원이나 과외를 보내며 쓰는 사교육 비용을 따져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획일화된 입시교육을 탈피하기 위한 대안교육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7년 이후 전국에 200여 개의 대안학교가 문을 열었다. 초기의 대안학교들이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주로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의 대안학교는 고급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문을 연 ‘2세대 대안학교’들은 국제화를 모토로 영어 수업과 승마, 골프 등 특별활동 등의 교육 과정을 마련해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대비를 강조하는 경기 이천시의 앤탐슨아카데미, 해외 유학에 초점을 맞춘 경기 고양시 일산 서구에 위치한 등대국제학교, 승마 등의 특별활동이 많은 강원 강릉시 자연촌학교(위로 부터). 전영한 기자·앤탐슨 아카데미·자연촌학교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대비를 강조하는 경기 이천시의 앤탐슨아카데미, 해외 유학에 초점을 맞춘 경기 고양시 일산 서구에 위치한 등대국제학교, 승마 등의 특별활동이 많은 강원 강릉시 자연촌학교(위로 부터). 전영한 기자·앤탐슨 아카데미·자연촌학교
○ 영어 수업에, 각종 특기교육으로 무장한 신흥 대안학교 인기

국제반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 도심형 대안학교인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경기국제학교에는 현재 22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3분의 2 이상의 학생이 외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만큼 영어로 대부분의 교과 과정 수업이 이루어진다. 입학금과 학비를 합치면 1년에 1200만 원가량이 들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만족하는 표정이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조모 양(16)은 “외국어고에 낙방한 뒤 일반고를 거쳐 전학을 왔다”며 “토론 수업이 많고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 유학 준비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등대국제학교 등 국제화를 강조하는 수십 개의 대안학교는 영어 수업을 하고 국제반을 운영한다.

지난해 강원 강릉시에 문을 열고 올해 첫 신입생을 뽑는 자연촌학교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문무(文武)를 아우르는 교육을 표방하며 골프, 승마, 바다수영, 산악훈련, 스키, 무술, 요가 등 다양한 특별활동을 내세우고 있다. 수업료 월 90만 원, 기숙사비 월 75만 원, 특별활동비 등을 감안하면 학비가 연간 3000만 원 정도 된다. 경기 이천시에 3월 문을 여는 ‘앤탐슨 아카데미’는 국제화에 초점을 맞춘 기숙사형 대안학교.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고 SAT 특별반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입학사정관 전형이 확대되면서 이들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고 한다. 앤탐슨아카데미 관계자는 “소규모로 다양한 체험과 토론수업을 벌이는 대안학교가 입학사정관 제하에서 효과적이라 생각해서인지 방문 또는 전화 상담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 일부 학생은 다시 일반학교로, ‘그들만의 학교’ 우려도

하지만 이들 학교에서 부적응 문제를 겪는 학생들도 있다. 영어로 수업을 하는 T대안학교에 다니다 일반 중학교로 전학한 황모 군(15)은 “무조건 영어를 쓰라는 선생님들의 말에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일부러 더 떠드는 등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들 학교는 대부분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인가 학교이기 때문에 커리큘럼은 자유롭지만 별도로 검정고시를 거쳐야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1세대 대안학교 ‘꿈의 학교’의 김의환 교장은 “대안학교법 개정 착수로 학교 인가가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최근 1, 2년 새 50여 곳이 문을 열었다”며 “국내 대학 진학 여부 등 진로를 결정한 뒤 학교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수천만 원의 학비에다가 ‘해외 유학’에 집중하는 이들 학교를 ‘대안학교’로 볼 수 있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이수광 전 교감(45)은 “최근 생겨나는 학교들 상당수가 진학과 조기유학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며 “진정한 대안교육의 방향에 대해 학교들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손현성 인턴기자 고려대 언론학부 4학년

최윤영 인턴기자 연세대 교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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