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열린 교제 vs 닫힌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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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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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사실은…” “솔직히 말해줘 고맙구나”
대화로 문제 풀어야… 역정-윽박 지르기는 부작용만

“부모님 ‘인정’ 받고 책임감 커졌어요”
“자꾸 거짓말… 스트레스… 성적도 뚝”

부모들은 자녀의 이성교제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아이가 학업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그래서 자녀가 이성교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윽박지르며 화부터 내기 십상이다. 부모의 걱정이 큰 만큼 몰래 이성친구를 만나는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에는 사소한 거짓말을 하다가 부모의 연락을 피하거나 아예 대화를 단절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고2 A 양(18)과 고3 B 군(19)은 약 2개월 동안 비밀연애를 하다 각자의 부모에게 교제사실을 고백했다. 이 사례를 통해 부모 몰래 교제하는 학생들이 겪는 고충, 그리고 자녀의 교제사실을 알게 된 부모의 대처법을 알아보자.

남녀공학에 다니는 A 양은 4개월 전 알고 지내던 학교 남자선배를 통해 B 군을 소개 받았다.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두 사람은 2주 후 교제를 결심했다. 초기에는 자신들에게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마냥 좋았다. B 군은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친구들 사이에선 ‘능력’으로 인정받기도 한다”면서 “부모의 눈을 피하는 것마저 연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들은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밀연애에 스트레스를 느끼기 시작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부모에겐 다른 친구의 이름을 둘러대야 하는 것이 답답했다. 아예 통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거나 방문을 걸어 잠그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 “말 못할 고민이 생겼느냐”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A 양은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생활습관에도 문제가 찾아왔다. 부모가 잠든 시간인 오전 3∼5시에 휴대전화통화를 해야 하는 탓에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고 수업시간엔 집중력이 떨어졌다.

B 군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데이트 비용. 데이트에 쓸 돈이 부족해 ‘참고서를 산다’ ‘친구 생일이다’ 등을 핑계로 정기적으로 받는 용돈 외에 수시로 부모에게 돈을 요구했다. 처음엔 선뜻 돈을 내어주었지만 이 같은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부모는 “새로 산 참고서를 보여 달라” “생일인 친구의 이름이 뭐냐”며 B 군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B 군은 독서실에 가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과일주스 가게에서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데이트를 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TV에서 본 것처럼 예쁜 카페에 가거나 집 근처 공원에서 손잡고 걷는 데이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행여 아는 사람이 보지는 않을까 걱정해 부모의 출입이 거의 없는 PC방이나 밀폐된 공간인 노래방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교제를 시작한 지 두 달 후 A 양과 B 군은 서로 힘든 점을 털어놓고 대화한 끝에 사귀고 있음을 부모에게 알리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이 크게 화를 내며 “당장 헤어지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눈치를 보고 밤을 새우는 생활을 반복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반대만 하신다면 ‘다시 몰래 만나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했다.

다음 날 A 양의 집. 생각지도 못한 딸의 고백에 놀란 부모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는 “각자 방에서 서로의 생각을 잠시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몇 분 뒤 A 양의 방에 들어온 엄마는 A 양의 예상과 달리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한 것은 참 잘한 행동”이라며 “앞으로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말했다.

B 군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오히려 “이성교제를 할 때는 남자가 먼저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게 아닌가. 교제를 허락하는 대신 ‘밤 10시 이전에는 들어오기’ ‘데이트 중에는 한 시간마다 연락하기’ 등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이후 많은 부분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PC방과 노래방에서 ‘탈출’해 조용한 카페에서 함께 책을 보기도 하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잠시 만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부모 옆에서 편하게 통화를 하면서 한없이 늘어나던 통화시간도 줄어들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책임감도 생겨 스스로 시험 전 1∼2주 동안은 만나는 것을 자제했다.

부모는 간혹 “엄마랑 한 약속 잘 지키고 있는 줄로 믿는다”고 말하며 구체적인 간섭을 하지 않았다. 약속한 귀가 시간을 조금 넘겨도 차분히 이유만 묻고 크게 화내지 않았다. A 양은 남자친구 B 군과 다툼이 생기면 편하게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할 수 있었다.

반에서 10등 안팎을 하는 A 양은 이성교제 후에도 성적이 떨어지거나 오르지 않고 현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반 하위권이던 B 군은 지방의 한 대학입학이 최근 결정됐으나 재수 여부를 고민 중이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자녀의 이성교제 고백에 부모가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팁]

[1] 사전에 대비하라
‘내 아이도 이성교제를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늘 필요하다. 자녀가 전교 1등을 해도 이성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TV 드라마나 영화를 자녀와 함께 보다가 청춘남녀가 데이트를 하거나 사랑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 은근슬쩍 자녀에게 ‘남자(여자)친구가 생기면 어떻게 데이트를 하고 싶은지’ ‘평소 어떤 스타일의 이성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봄으로써 자녀의 이성관을 파악해둔다.

[2] 일단 고마워하라
자녀가 이성교제 사실을 밝히면 일단 화내지 말라. 자녀를 추궁하거나 자녀의 말을 끊으면 자녀는 대화를 중단하면서 ‘역시 말한 게 잘못’이란 생각을 갖는다. 먼저 자녀의 솔직한 태도에 대하여 “그런 말을 엄마에게 하기 어려웠을 텐데, 먼저 이야기를 해주니 엄마가 기분이 참 좋구나”라며 고마움을 표현한다.

[3] 이야기를 하기보단 들어라
대화를 시작할 때는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엄마는 네 나이 때 이런 사람을 좋아했었는데,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라며 자녀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게끔 유도한다. 자녀가 말하는 동안은 계속 시선을 마주치면서도 불편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자녀가 이야기하는 중간 “음∼”, “그래∼” 식으로 자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전한다.

[4] 환경과 규칙을 만들라
건전하고 도움이 되는 교제를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 준다. 자녀가 이성친구와 같은 학원이나 도서관을 다니게 허락하거나, 이성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 이성교제를 계속하기 위한 몇 가지 합의사항을 자녀와 정할 수도 있다. ‘매일 오후 3시에서 오후 7시까지는 공부하기’ ‘10분 이상 전화하지 않기’처럼 구체적으로 정하고 항목별로 노트에 적는다. 노트는 부모와 자녀가 각자 보관하거나 냉장고, 책상 앞 등 잘 보이는 곳에 써 붙이고 1주에 한번씩 자녀와 함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를 확인한다.

[5] 명령이 아닌 생각을 말하라
정해놓은 약속을 어길 때는 “너 자꾸 밤에 늦게 들어올래?”처럼 자녀의 행동을 질책하기보단 “밤에 늦게 들어오면 혹시 이성친구와 나쁜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계속 걱정이 되니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처럼 부모의 ‘명령’이 아니라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다가간다.

※ 도움말: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이향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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