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성냥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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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6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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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던 시절, 석유 곤로에 불을 붙여 찌개를 데울 때. 한쪽에는 늘 성냥이 놓여 있었다. 집집마다 팔각성냥 등 ‘통성냥’ 은 필수품이었다. 유엔, 아리랑, 비사표, 향로, 기린표 등 성냥의 상표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다. 지금은 모두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올 겨울 전국에 100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한파는 그칠 줄 모르며 계속되고 있다. 추위 탓일까. 경북 의성의 국내 마지막 성냥공장인 성광 성냥공장에는 사람이 없다. 1500평이나 되는 공장에는 고작 8명이 수십 대의 기계를 지키고 있다. 공장 기계는 하루에 2~3대만 가동된다.

성광 성냥공장은 1954년 설립 돼 손진국 대표(75)에 이어 그의 차남인 손학익 상무(45)가 가업을 잇고 있다. 이곳은 한때 200명도 넘는 종업원들로 온종일 기계가 돌아갔다. 이마저도 일감이 모자라 읍네 가정집에 일감을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 의성 사람이라면 성광에서 일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향로성냥’과 ‘덕용성냥’이 이곳에서 만들어 졌다.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식당이나 다방 판촉용 상품으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성냥공장은 개항기인 1886년 인천에 처음 생겼다. 이후 1917년 인천시 동구 금곡동에 2000여 평 규모 성냥공장 조선인촌(朝鮮 燐寸)이 설립되는 등 지난 70년대 후반까지 전국적으로 3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성냥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고 값싼 중국산 성냥에 밀리기 시작했다. 80년대 1회용 라이터가 등장하면서 성냥산업은 치명타를 입었다. 대부분의 성냥업체들은 중국산 성냥의 포장.판매공장으로 전락했다.

성광 성냥공장은 모든 작업이 하루 만에 이뤄지던 것이 지금은 3일에 걸쳐 성냥갑이 만들어진다. 예전에는 각각의 파트로 분담이 돼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과정을 8명이서 함께 한다. 하루는 지름이 1미터짜리 포플러 나무를 깎아 축목작업(성냥개비)을 한다. 다음날엔 인산을 뿜은 나무를 말려 유황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 셋째 날에 성냥알을 포장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나무, 유황 등 모든 공정에 필요한 재료는 모두 국산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남은 유일한 성냥공장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중국산 제품 대부분이 ‘메이드인 코리아’로 둔갑된 채 팔리고 있다. 손학익 상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온 성냥 중 서울, 경기도 지역은 모두가 중국산이다”라면서 “하지만 제조업체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한국산으로 표기 돼 있다”며 지자체나 정부의 단속을 주문했다.

손 상무는 공장운영을 위해 대구에서 기획사를 함께 운영한다. 광고 홍보, 판촉물 제작, 인쇄 등 이곳에서 남는 수익은 모두 성냥공장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한다. 그는 얼마 전 1억 5천만 원짜리 보험을 해약해 성냥공장에 ‘재투자’했다. 그는 “성냥공장 제조 작업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라며 “마지막 남은 국내 유일한 성냥공장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사명감과 명맥을 잇기 위해 힘닿는 데 까지 일해 볼 예정이지만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

▲ 동영상 = 사라져 가는 것들…마지막 남은 성냥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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